8차화요마당> 고교평준화 논란

by KG posted Feb 06, 2004
안녕하십니까. KG 화요마당지기 이윤주원입니다.

지난 2004년 2월3일, KG 8차 화요대화마당을 성황리에 잘 진행했습니다.
모두 열 분이 참가해주셨구요. 뱃속의 애기와 함께 오셔서
교육현장의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신 홍은정 선생께 감사드립니다.
손종도, 永樂, 윤여진, 이왕재, 이윤주원, 이호준, 정낙근, 한미현, 홍은정/ 손동주(뒷북)

이 글은 지난 화요대화마당에서 논의된 것을 제 주관을 보태 정리한 글입니다.
그래서 조금은 다른 의견을 가진 분들도 계시리라 믿습니다.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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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 평준화, 무엇이 문제인가?

-고교평준화 논쟁을 지켜보면서-


고소득층 자녀가 서울대에 더 많이 입학한다는 보고서가 발표되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은 의사, 교수 등 고소득 직군 부모를 둔 수험생의 서울대 입학률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16배 가량 높다고 보고서에서 밝혔다. 특히, 강남 8학군 출신 학생의 서울대 입학률은 전국 평균 2.5배라고 한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고교평준화제도 아래에서는 빈부차로 인한 사교육 격차가 학력세습을 좌우한다고 볼 수 있다. 학력이 세습되니, 사교육비를 댈 능력이 없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가난을 대물림하게 된다. 곧 고교평준화제도로 인한 학력세습과 가난의 대물림은 계층간의 이동을 막고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이런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소의 발표는 우리사회에 격렬한 ‘평준화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보수언론은 학력저하, 사교육비 급증, 공교육 붕괴, 가난의 대물림 등의 원인이 평준화에 있다는 식으로 몰았다. 이와 반대로 전교조 등의 교육단체들은 현 교육제도의 문제는 평준화가 아니라며 보수언론의 마녀사냥에 강한 경고를 보냈다.

한낱 교육제도가 한국사회의 고질적인 보혁갈등으로 드러난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우리는 보혁갈등의 틈바구니 속에서 무엇이 옳은지 판단하기 전에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교육은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서 효율성을 우선하느냐, 평등권을 우선하느냐 나눌 수 있다. 또한 학생들 사이의 경쟁을 중요하게 보느냐, 교사나 학교들 사이의 경쟁을 중요하게 보느냐에 따라 다른 입장에 설 수 있다. 물론 교육받을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입장에서 보면 ‘경쟁’이란 단어가 교육현장에서 쓰이는 것조차 인정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현장에서 경쟁한다 함은 신자유주의의 시장논리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평준화 논쟁 속으로 뛰어 들어가면 확고하게 그어진 대립전선을 만나게 된다.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에서부터 우리사회는 아직 합의되지 못한 대립된 갈등의 축을 갖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밝혀둘 것은 평준화 폐지가 선(善)이 아니듯이, 평준화 유지도 절대 선(善)은 아니다. 인간이 만든 제도에서 완벽함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한국교육제도의 뼈대를 이루던 고교평준화 제도는 왜 뜨거운 감자가 되었을까? 고교평준화제도는 30년 전, 고교입시제도가 있던 시절 중등교육에서 과열된 입시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하기 시작했다. 평준화는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과 맞물려 몇몇 지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시∙도로 확대되어 지금까지 유지되어왔다.

평준화 폐지를 반대하는 측의 주장은 이렇다. 보수언론들이 평준화 폐지의 장점이라고 내세우는 학력저하의 방지, 사교육비의 급감, 공교육의 보존 등이 전혀 실증된 증거가 없는 가설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평준화 폐지로 서열화된 대학을 넘어 서열화된 고등학교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우려한다. 그들은 서열화된 고등학교의 출현은 학연의 문제를 대학에서 고등학교까지 끌어내릴 것이라고 말한다. 40대 후반 50대 초반이 갖고 있는 경기고-서울대의 학맥 같은 뿌리 깊은 학연의 추억이 다시 젊은 세대에게 현실로 나타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물론 위와 같은 이유로 고교평준화제도가 옳다고 주장하기에는 미흡함이 있다. 고등학교 교육을 국민들이 평등하게 받아야 할 보통교육으로 봐야하는지, 아니면 고등교육으로 봐야하는지 정리된 입장은 없다. 이런 현실에서 고등학교 교육과정을 일률적으로 평준화시키는 것도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평준화가 갖고 있는 문제점이 심각하기도 하다. 우선 교사들은 경제적으로나 성적으로나 격차가 큰 이질적인 아이들을 대할 때 원활한 지도가 무척 어렵다고 호소한다. 그렇다고 학교차원에서 성적(학력수준)에 따라 아이들을 나눈다면, 학력수준이 낮은 아이가 당할 모멸감과 좌절감을 무시할 수도 없다. 이것 말고도 경쟁력이 떨어지는 교사들의 자질문제, 교육과정의 천편일률적 중앙통제 등 많은 현실적 문제를 지닌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사립고가 50%가 넘는 우리사회가 공교육의 제대로 된 인프라도 구축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안 없는 평준화 해제를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이런 현실에서 평준화 폐지는 입시지옥을 3년 앞당기는 꼴이 될 것이다. 그로 인해 늘어나는 사교육비를 서민들은 어찌 감당할 수 있을 것이며, 아이들은 입시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당할 수 있으랴. 평준화는 학벌이 인생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한국풍토가 깨어지지 않는 한 그 존속의 의미를 갖게 될 것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할지라도…. 우리의 현실에서 평준화 폐지를 말하기에는 준비된 것이 너무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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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대화마당에 참가했던 분들의 의견을 간략하게나마 정리해봅니다.

*교육문제가 나오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성을 상실한다는 소리까지 듣는다. 그만큼 다수 국민에게 교육의 문제는 생존의 바로미터로 인식되고 있다. 지금 평준화 존속과 폐지로 여론이 양극화되고 있으며, 평준화 존속은 철 지난 평등주의로 매도되는 경향까지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교육 받아야 한다는 헌법상의 권리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평준화 해제가 국가인재양성이나 학력세습과 사교육비 폭발의 해결책이 될 수는 없다. 오히려 비평준화는 입시지옥을 더욱 길게 만들 뿐이며, 국가능력의 제고나 공동체 비용의 감소를 도외시하고 다만 '공부 잘 하는 아이들'의 입신만을 고려한 이기심으로 교육정책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의심마저 들게 한다.

*평준화, 비평준화 논쟁이 본격적으로 도마에 오른 시점은, 한국사회의 비전이 상실된 1998년 국가부도위기 이후다. 그 뒤로 한국의 국가능력(National Capacity)는 심각히 저하되었으며 탈출구를 찾기 위해 교육부를 교육인적자원부로 개편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입시문제나 평준화 문제에서 발목이 잡혀 있을 뿐, 인적자원의 활로를 열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입시나 평준화문제는 국가 인적자원 개발 그리고 그 핵심이 되는 대학교육 정상화의 하위 레벨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고교교육의 문제로 끝없이 내몰리면 해결은 난망하다.

*7차 교육과정에서 고1까지는 국민공통교육과정이고 고2부터는 선택이 가능하다. 이리 보면 고1까지는 전적으로 공교육시스템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고2부터 선택 교육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현실 여건도 불비하다. 교육현장에서 봤을 때 앞으로 10년이 가더라도 그 여건 완비가 가능한지 의문이다.

*타국은 사립고가 10% 이내로 나름의 엘리트 교육으로 잡혀있다. 그러나 한국의 사립고는 50%에 달하고 그나마 공교육의 연장선에서 혈세로 운용되어온 半공립이다. 이 현실을 고려할 때 평준화 해제를 주장하는 것은 대안부재의 주장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교육 인프라를 염두에 둔 평준화 개선보완이 적절하다고 본다.

*지금 특목고는 애초의 의미를 상실하고 특정대학 특정학부로 가는 징검다리로 전락했다. 이공계와 인문계가 의미를 상실한 대학교육의 정상화 없이, 특목고의 증설이나 자립형사립고의 신설은 결국 입시 종합반 상위 클래스의 제도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교실에서 아이들간의 이질성이 너무 드러난다. 그러나 무슨 기준으로 아이들을 나눌 것인가. 핵심은 학습의욕이다. 학습성취도가 높아도 선행학습으로 교실을 외면하는 아이와 학습성취도가 낮아도 배우려는 의욕이 수월한 아이가 있다. 이를 무시하고 성적으로 나누게 되면 교실은 붕괴되고 학원이 된다.

*고도성장기와 저성장기의 공교육은 달라져야 한다. 고도성장기에는 졸업 후 생계보장이 가능하기에 70명 교실도 유지되지만, 저성장기 특히 한국처럼 교육인플레가 심한 곳에서는 청년실업을 면하기 어렵다. 중등과정에서부터 아이들의 숨은 재능을 살리고 진학 말고도 실질적인 삶의 방식을 세심하고 정확하게 제시하기 위해서는 '케이스 바이 케이스'의 교육이 불가피하며, 이를 고려해 시수의 단축이나 학급당 인원의 축소도 적극 고려할 필요가 있다.

*지금의 교육정책은 고교까지이고 대학은 없다. 대학교육의 정상화 없이 교육의 수월성을 담보할 수는 없다. 포항공대나 한동대의 사례를 흘러 들어선 아니 된다. 평준화의 개선 보완 문제는 그 다음에 논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다.

*과거 70명 학생들보다 요즘 35명 학생들 수업하기가 왜 더 어려운지 봐야 한다. 학생이나 대학 나온 학부모에게 지식정보의 획득처는 학교 밖에도 얼마든 널려있고 그로 인해 교사에 관한 전통적 신뢰도 사라졌다. 그렇다면 공교육의 현장에서 예비시민들에게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근본적인 질문을 할 때가 왔다. 시민사회와 국가사회 그리고 국제사회에서 공히 통용되는 '공동체형 21세기 시민양성소'로 학교는 다시 바뀌어야 하고 그에 걸맞게 교사와 교육정책도 달라질 필요가 있다.


이 외에도 많은 고견이 있었습니다만 충분히 정리하지 못했습니다. --;
대신 당일 이목을 한데 모은 '된장의 五德' 특강 시리즈는 계속될 것입니다.
앞으로 매주 화요일 저녁에 마당지기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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