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차화요마당> 동양화는 없다...

by KG posted Feb 14, 2004
9차화요마당> 동양화는 없다...


안녕하십니까. KG 화요마당지기 이윤주원입니다.

지난 2004년 2월10일, KG 9차 화요대화마당을 조촐하게 잘 치렀습니다.
모두 일곱 분이 참가해주셨구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로 한 독립큐레이터 김경아 회원이 못 오시어 아쉽지만...
(김경아 회원이 2월말까지 덕수궁에서 전시회를 한답니다. 들러보시길...)
모처럼 예술과 인생의 깊이를 더해주신 정용국 선생께 감사드립니다.
정용국, 김정대, 이왕재, 永樂, 이윤주원/ 강주리, 강성룡 (뒷북)

으레 있는 토론회도 아니고 예술에 관한 방담을 옮기려니 너무 힘이 듭니다.
많이 부족할 터이니 다른 참석자 분이 메워주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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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는 없다...

-古拙이 컨셉이 될 수 있을까-



서양화가 面이라면 동양화는 線으로 비유됩니다. 面은 그 공간에 무언가 가득 채워야 하는 構造物이라면, 線은 氣勢이자 波長입니다. 그래서 동양화는 반드시 餘白이 있습니다. 여백의 미는 곧 空입니다. 이 空은 White가 아닙니다. 空은 곧 詩입니다. 그래서 현대사회는 동양화를 용납하지 못합니다.

시대를 같이 한 동양화가들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雲甫 金基昶. 以堂 金殷鎬의 제자입니다. 스승은 胡粉(조가비 가루) 위에 그린 서양화풍에 일본식 감수성이 듬뿍 묻어나는 세밀화로 명성을 떨칩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입니다. 그런데 일제가 패망하니 부득불 일본풍의 사실화를 버리고 붓을 들고 線을 그리게 되었는데, 延命은 물론이거니와 그 線에 뻗쳐나는 압도적 기운으로 운보는 새로이 주목받게 됩니다. 그게 바로 유명한 바보 산수화입니다.

동양화의 미덕 중에 古拙 혹은 拙朴이 있습니다. 세련됨과는 거리는 물론 차원도 다릅니다. 이게 참 묘합니다. 중국을 예로 들면, 과거 사진이 없던 옛날에 사진보다 잘 그리던 畵院도 있었지만 송대 소식에서부터 이어오던 識者然하는 文人畵의 계보도 있었습니다. 그 문인화란 게 畵院과는 다른 -그림솜씨로만 따지면 비할 수가 없죠- 사대부의 자기성찰이랄까, 붓 몇 번 치고 세상을 담는, ‘최소행위로 최대의 이야기를 담는 수행이자 수양’이라고 自讚을 했는데 그게 바로 古拙입니다. 심지어 동양화와 아무 관련이 없는 현대 화가들조차 밀년에 가면 古拙을 찾는 이들을 종종 봅니다. 하기야 사진이 나오고 나선 사실화가 설 자리가 없고 그 다음부터 현대미술이 통째 사변화의 길로 접어들었으니 말입니다. 피카소도 이런 말을 했죠. “난 렘브란트 식 그림은 18세에 끝냈다”

굳이 따지면 제가 동양화를 그리는 셈인데, 늘 질문을 던집니다. 무엇이 동양인가?
이미 동양은 없습니다. 모든 게 서구화된 지 옛날인데, 사실 아편전쟁 이후에 동양은 과거가 되지 않았습니까. 취미로서 동양은 가능하지만 현실로 가능할까. 예술이란 감성과 맞닿는 그 무엇인데 말입니다.

김경아씨 말고 저도 큐레이터입니다. 소통의 매개자죠. 칸트가 말한 적정거리를 만드는...
요즘 사람들 관심이 부쩍 높아져 미술관 중 흥행이 되는 곳은 돈도 법니다. 대신 전공자는 나날이 줄어듭니다. 특히 문인화, 落款을 찍을 줄 아는 진짜배기는 대가 끊길 정도입니다. 그 자리를 앞으로 메워갈 주자들이 서예학원입니다. 화가수업 받는 이들도 못 하는 일을 그 곳의 매니아들이 대신하게 생겼습니다. 이건 비아냥이 아니라 추세일 수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문인화는 이미 舊韓末에 소멸된 것이나 진배 없습니다. 문인화란 게 결국은 詩書畵가 같이 가는 겁니다. 붓 들고 詩도 짓고 書도 하다가 취흥이 돋아 線을 치면 그게 곧 文人畵입니다. 그런데 지금 흉내를 내는 사람은 있어도 詩書를 능통하는 이는 없습니다. 그나마도 취흥은 까페에서 맥주로 돋우니 말입니다. 몇 년 전까지 동양화냐 한국화냐 논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더 이상 그 논쟁을 하려는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傳統은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다 傳承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동양화가 되든 한국화가 되든 문인화가 되든, 오롯이 이어낼 것은, 공통으로 담아내려 한 線과 氣勢 그리고 空과 省察 혹은 修養입니다. 더 이상 붓과 한지가 아니라 현대의 매체에서 그 핵심을 담아내보고자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山水가 사라진 곳에 山水畵는 존재할 수 없고, 文人이 없는 곳에 역시 文人畵도 이어질 수 없습니다. 그 핵심을 21세기에 다시 이으며 표현수단인 매체의 변화까지 아우러 새로운 예술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 蛇足

예술 하는 족속이 미치는 순서가 있답니다. 글쟁이 고집 셉니다. 그러나 음악 하는 사람들 앞에서 꼼짝 못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걸터앉은 게 환쟁이들입니다. 글쎄 이해의 난이도에 따라 반비례한다고도 볼 수 있죠. 옛날에도 그랬는데, 지금은 서양화조차도 영상과 인터넷에 포위되어 세상과의 소통에서 숨을 헐떡거립니다. 심지어 익명성과 맞물려 모더니티 이래로는 소통이 불가능하지 않냐는 이야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사람 숨 막히게 하는 예술의 상업성... 피카소조차 畵壇과 畵廊이 붙어키운 스타일 수도 있고... 박수근은 몰라도 이중섭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소장자들 때문인지... 좋게 말하면 현대미술은 컨셉의 전쟁인데 이건 곧 시장을 모르고 그 눈에 들지 않으면 생명을 잃는다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예술을 만들겠다는 이야기... 미친 짓이죠... 저 또한 여러분과 소통이 불가능한 미친 놈입니다...

* 2월17일은 김박태식 회원과 함께 하는 '이라크에서 본 Asia 그리고 Korea'
10차 화요대화마당입니다. 어서들 오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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