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차 화요대화마당-고구려의 교훈에서 배우는 동아시아와 한국의 미래

by 希言 posted Sep 16, 2004
고구려의 교훈에서 배우는 동아시아와 한국의 미래


중국의 외교부부부장의 방한 이후 고구려사 왜곡 문제는 일단락되었다. 봉합 차원의 합의였지만 우리로써는 이번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덕분에 국민들 사이에서 고구려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부흥시키는 작은 성과도 있었다. 중국과 이번 합의 과정에서 한국 외교담당자가 “간도문제를 다시 거론하지 않겠다”는 망발 때문에 실익을 얻지 못했지만, 이성을 되찾고 앞으로 전개될 중국의 동북공정에 맞서 한국 측의 치밀한 대응이 더욱 요구되고 있다.

지금 동아시아는 서구사회에서 소멸해가고 있는 때늦은 민족주의(중국의 패권적 중화주의,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받쳐주는 쇼비니즘, 한국의 저항적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동아시아를 휩쓸고 있는 이 민족주의는 평화와 공존을 위협하는 걸림돌이다. 따라서 우리는 6~7세기 동아시아 패권을 유지했던 고구려의 교훈에서동아시아의 미래를 모색해봐야 한다.


1. 동북공정의 감춰진 음모

동북공정의 본래 목적은 중국의 고구려사 빼앗기가 아니었다. 중국이 추진하는 동북공정의 감춰진 의도는 간도문제, 조선족 문제, 통일한국 이후의 동아시아 패권 문제에 대한 중국의 명분 쌓기였다. 동북공정은 앞서 열거된 문제에 대해 중국이 명분을 쌓기 위한 포장된 프로젝트일 뿐이다. 그런데 한국 측의 연구자들과 언론은 동북공정을 고구려사 빼앗기로 판단하고(연구자들과 언론도 동북공정의 감춰진 의미를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의도적으로 고구려사 빼앗기로 몰고 갔다. 중앙일보는 동북공정 프로젝트가 중국화폐로 3조의 거대한 규모의 국가사업이라고 최초의 오보를 했고, 많은 연구자들이 고구려연구재단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실제 23억원에 불과한 동북공정 사업비를 의도적으로 무시했다) 감정적인 대응에 주력하였다.

물론 동북공정을 고구려사 빼앗기로 규정한 한국 측의 연구자들과 언론의 노력으로 중국영토 안에 있는 고구려 유적과 북한 영토 안에 있는 고구려 영토가 동시에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는 쾌거도 이루었고, 한국 내에 고구려연구재단을 설립하는 성과도 이루었다. 그러나 이는 소소한 전투에서 승리했을지 몰라도 전세를 좌우하는 큰 싸움에서 한국은 졌다.

동북공정의 고구려사 왜곡이 한참 이슈가 될 무렵 언론에서는 중국 측의 고구려사 연구자와 규모가 한국을 앞선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의 우려와 다르게 중국의 고구려사 연구가 한국을 앞설 수는 없다. 왜냐하면, 중국에 있어 고구려 역사는 주체의 역사가 아니라 객체인 지방정권의 변방사일뿐이다. 이와 다르게 우리에게 고구려 역사는 지방정권의 변방사가 아니라 고조선➟고구려➟고려 등으로 민족 정통성을 계승해주는 주체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중국이 당태종 이세민 중심의 연구 및 서술이 아니라 연개소문 중심의 연구 및 서술로 관점을 옮길 수 있을까?

이렇듯 고구려 역사에 대한 태도, 목적에서 명확한 차이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고구려사 연구가 중국에 뒤질 이유가 없다. 실제로 중국 내 고구려사를 주제로 박사논문을 쓴 학자는 1명 정도이다. 그에 비해 한국은 북한을 제외해도 30여명이 넘는 박사논문 소지자를 보유하고 있다.

8월 한․중합의로 동북공정과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1라운드는 종결됐다. 이제 한국은 치밀한 전략을 갖고 2라운드를 준비해야 한다.


2. 고구려에서 배우자

역사는 과거의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이다. 과거의 기억이 현실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의 역사는 현실에 있어 명분이 됨으로써 강한 힘을 발휘한다. 역사학자 콜링우드는 그의 저서 『The idea of history』에서 “역사는 곧 자기인식”이라고 했다. 다시 말해 역사란 자기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역사는 해석학이자 경험의 보물창고이며 교훈과 미래의 모델, 문화산업 콘텐츠의 핵심이다.

고구려 역사가 우리에게 소중한 이유는 만주벌판에서 광대한 영토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다. 고구려의 넓은 영토만 보고 고대국가로서 위대하다고 칭송한다면, 그런 역사의식은 천박한 수준일 수밖에 없다. 고구려가 위대한 이유는 땅이 넓었기 때문이 아니라 대국(大國)을 이룬 고대국가였고, 그 대국의 경험을 현재의 우리들에게 알려줄 수 있기 때문이다.

➀ 고구려는 뛰어난 변신 능력을 갖춘 국가였다.
고구려는 ‘정보’에 민감한 국가였다. 냉혹한 동아시아의 국제정세 속에서 국가의 정체성을 지키며 생존과 번영을 꿈꾸려면 ‘정보’에 촉각을 세우고 끊임없이 변신을 해야 한다. 고구려는 국가창건 초기부터 대국을 꿈꿨던 나라이기에 정보에 많은 투자를 했다. 조선과 고구려를 비교해보면 정보에 대한 고구려의 태도는 명확해진다.

조선은 제후국으로서 만족했기 때문에 전혀 국제정세에 귀를 열지 않고 반도 안에서만 갈등과 반목을 반복하다가 일제에 의해 왕조의 문을 닫게 된다. 그에 반해 고구려는 정보수집 및 분석능력을 키워 끊임없이 변신했다.

초기 고구려는 약탈국가였다. 동아시아를 호령했던 모든 유목민족이 그러하듯이 고구려도 국가창건 초기에는 중국대륙을 위협하고 약탈하던 약탈국가였다. 고국원왕이 중국의 북경 근처까지 침범해 들어간 기록을 보면 초기의 고구려가 얼마나 기동력이 뛰어난 약탈국가였는지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대국의 꿈꿨던 고구려는 다른 유목민과 달리 약탈국가에서 머물지 않고 농경국가로 변신을 하게 된다. 영토가 넓어지고 인구가 증가하면 대륙을 약탈하는 수준으로는 국가의 경제를 유지하기가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구려는 더 높은 생산성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정착(농경)국가로 변신하게 된다.

5세기 초 위대한 정복군주들을 갖게 된 고구려는 평범한 농경국가에서 지금의 대련항을 중심으로 바다로 뻗어나가 대륙과 해양을 포괄하는 제국(帝國)을 건설하게 된다.

➁ 고구려는 창건 초기부터 대국(大國)의 의지를 지닌 국가였다.
고구려의 창건자(추모왕=주몽)들은 당당한 과거의 기억(고조선의 기억)을 생생하게 가슴에 담은 자유정신의 소유자들이었다. 더구나 그 중심에 서 있던 추모왕은 동부여의 왕자라는 안정된 자리를 버리고 대국의 의지를 품은 채 새 왕국을 건설한 벤처창업가였다.

➂ 고구려는 경제, 군사, 문화, 인재의 중심지였다.
고구려가 동아시아 문명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인재 쟁탈전에서 승리했기 때문이다. 인재 문제는 현재를 조명하더라도 마찬가지이다. 현대사회에서 인재의 집합소는 미국이고 인재들이 모여드는 미국은 곧 세계의 경영자이다. AD 5세기에서 7세기 경 고구려는 바로 미국과 같은 문명의 중심 국가였다.

➃ 고구려는 끊임없는 국가의 국부(國富)를 성장시킨 나라였다.
고구려는 끊임없이 국가의 국부를 키워왔다. 나눌 부(富)가 작은 나라는 결코 문명의 중심국이 될 수 없다. 고구려는 작은 이익에 목을 매지 않았다. 고구려에서 유목민(선비, 거란, 말갈 등), 여성, 하층민(ex 바보온달), 상업가, 군부 등 사회구성원 모두가 국가운영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이 국부를 키워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은 성장이 정체된 상황에서 분배에 대한 갈등이 커지고 있다. 고구려의 경험을 우리는 배워야 한다.

또한 고구려는 인간능력의 다양성을 보장해주었고 천하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으로 세계를 바라보았으며 수·당과는 자유의지로 싸웠던 나라였다.


3. 동아시아와 한국의 미래와 방향

동아시아의 미래는 그다지 밝지 않다. 불확실한 동아시아의 정세 속에서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이루려면 우리는 고구려의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고구려사에서 어떤 것을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간도와 조선족, 남북 분단의 근본적인 해법과 한반도 미래의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 고구려사를 고대사로 협애하게 볼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인 의미에서 확장, 조명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중국이 과거의 중국이 아니다. 따라서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꽤 뚫는다 하더라도 현재의 중국을 이해할 수는 없다. 앞으로 동아시아에서 한국의 생존과 번영을 위해서는 중국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한국은 중국 전반은 물론 향후 한국의 생존과 번영에 변수로 작용할 중국 내 소수민족과 만주에 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하다. 우리는 정보에 민감하게 집중해야 한다. 고구려인들처럼 의지를 갖고 중국(미국도 포함)에 귀와 눈을 열고 놓고 정보에 촉각을 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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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2004년 9월 14일 코리아글로브 화요대화마당에서 강의된 내용은 정리한 것입니다.
강의 : 김용만(우리역사문화연구소 소장)/정리 : 이주원(코리아글로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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