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차 화요대화마당-‘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 위헌 심판 어떻게 볼 것인가?

by 希言 posted Oct 29, 2004
39차 화요대화마당

일시 : 2004년 10월 26일 오후 8시
장소 : 코리아글로브 회의실
참석 : 김석규, 이호준, 강주리, 박소희, 이주원, 강성룡(뒤풀이 때)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 위헌 심판 어떻게 볼 것인가?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서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에 대해 위헌 심판을 내렸다. 예상했던 결과였다. 물론 헌재의 위헌 심판에 반발하는 청와대와 열린우리당 그리고 행정수도 이전을 지지했던 시민들로서는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을 추진했던 정치세력이 위헌 심판을 예상하지 못한 것은 헌재에 대한 이해(理解)가 낮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대한민국의 헌재는 헌법의 최종 유권해석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87년 6월 시민항쟁의 정치적 산물이다. 1960년 설치 규정 직후 박정희의 쿠데타로 무산되었으나 1987년 헌법개정에 의해 설치되었다. 헌재는 권력에 의한 헌정질서의 문란을 막기 위한 안전장치로 김영삼, 김대중 등이 이끌던 야당의 전적인 동의아래 탄생하였다.

헌재는 법령의 합헌성(合憲性)을 심판하기 위해 설치된 특별재판소이자 사법적 헌법보장기관, 최종심판기관, 기본권보장기관이다. 따라서 헌재의 심판권은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갖고 있다. 올해 내려진 헌재의 심판을 보면 왜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갖고 있는지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올 한 해(양심적 병역거부, 노무현 대통령 탄핵, 호주제, 국가보안법,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 문제 등)동안 헌재에서 다룬 위헌 소송에서 헌재는 국민여론에 충실하게 심판했다. 만약 국민여론이 엇비슷하면 헌재는 지루하리만큼 질질 끌었다. 헌재는 국민 다수의 여론에 근거하여 정치적인 판단을 하는 헌법기관이기 때문이다.(그런 이유로 관습헌법이라는 논쟁을 시민사회에 던져주기도 했다.)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 위헌 심판은 위임권력의 불구화(不具化)를 가속시킴>

올해만큼 헌재가 뉴스의 이슈로 떠오른 적은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게 기사회생의 기회를 열러준 탄핵소추 심판 때부터 헌재는 뉴스메이커였다.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 위헌 심판으로 헌재는 국민 개개인의 가슴마다 뚜렷한 인상을 심어줬다.

그러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인 헌재가 뉴스에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세상이 혼란스럽다는 것을 뜻한다. 고도의 정치적인 판단을 하는 헌법기관이 자주 뉴스에 노출된다는 것은 대통령과 입법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졌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 탄핵 소추와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 두 건 모두 입법부의 무능과 실패를 보여주는 아이콘이다. 한나라당이 주도한 대통령 탄핵소추는 국민의 여론을 반영한 헌재의 심판으로 입법부의 권위 실추는 물론 17대 국회의 물갈이까지 이루어지게 했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정권의 명운(命運)을 걸고 밀어붙인 행정수도 이전도 국민의 여론을 반영한 헌재의 심판으로 대통령과 입법부의 권위를 다시 한 번 실추시켰다.

입법부와 행정부의 수장 대통령이 정치적 타협을 이뤄내지 못하고 매번 헌법소원에 의지하는 것은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정착에 매우 위험한 상황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합의할 때까지 논의해야 할 정책적 과제들을 매번 헌재로 가져간다면 대의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위임권력이 불구임을 시인하는 꼴밖에 안 된다.

청와대와 입법부(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는 국가의 정책을 놓고 소모적인 이데올로기 논쟁을 멈춰야 한다. 뭐가 좌(左)이며 뭐가 우(右)인가?

특히 이번 심판의 결과로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정책조정력을 상실하여 레임덕의 가속화를 막기엔 역부족일 것이다. 따라서 청와대나 입법부 모두 다 위임권력이 불구화되는 위기상황에서 정치 리더십의 확보는 중요한 과제로 떠오를 것이다. 그렇다고는 해도 국민들은 노무현 대통령의 정치스타일인 승부수 정치는 바라지 않을 것이다. 만약 노 대통령이 다시 한번 승부수 정치를 들고 나온다면 더 이상 미래를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 위헌 심판의 파급효과는?>

정치적 목적을 지닌 성급한 행정수도 이전으로 예상되는 국력(재정)의 낭비를 막았다는 점에서 헌재의 심판은 긍정적이다. 그렇더라도 ‘신행정수도이전특별법’ 위헌 심판은 결과적으로 서울 기득권의 보장으로 귀결되었다. 그동안 대한민국 국론분열과 갈등의 축은 진보 대 보수, 영남 대 호남이었다. 이번 위험 심판 이후 갈등의 축은 이데올로기적으로는 진보 대 보수, 지역적으로는 서울 대 지방으로 변화할 것이다.

가열화가 예상되는 서울 대 지방의 갈등을 축소 또는 예방하려면 여·야의 대타협을 통한 합의가 필요하다. 그러려면 여·야 모두 스스로 위임권력의 입지를 위축시키는 타성을 버려야 한다. 정책조정력을 상실한 여당은 밀어붙이기 식으로 4대 법안을 통과시키려하지 말아야 하며, 야당 또한 4대 법안을 헌재로 가져가겠다는 발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허탈해 하는 충청지역의 시민들에게 희소식을 줘야 한다. 인구분산 효과는 떨어지겠지만 제3의 행정타운을 건설해야 한다. 이곳에 옮겨질 국가기관은 주로 과학기술 분야를 다루는 기관과 국책연구소, 대학으로 좁혀야 한다. 지역의 균등발전이라는 명분아래 국가경쟁력을 주도할 주요 행정 기관들을 옮길 필요는 아직까지 없다. 대신 분권정책을 빨리 추진해야 한다. 한시라도 늦추면 타이밍을 놓치게 될 것이다. 물론 분권정책을 추진시 재정분권은 시차(時差)를 두어야 한다. 수도권 같은 지방정부는 재정분권은 내심 바라겠지만 재정자립도가 형편없는 지방정부에 대한 중앙정부의 정책적 배려를 위해서는 재정분권은 함부로 추진할 국가정책은 아니다.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는 행정부의 분산 이전을 통해 지역균형발전을 도모한다는 류의 발언을 경계해야 한다. 베이징과 동경에 맞먹는 경쟁력을 가진 서울의 경쟁력을 아무런 대안 없이 해체시킬 수는 없다. 아직까지 지방자치가 자리 잡지 못한 시점에서 성급한 분산 정책으로 국가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 인공위성에서 찍은 동경, 상하이, 북경과 수도권의 위성사진을 보면 동아시아에서 그나마 경쟁력이 있는 수도권조차 얼마나 초라한지 쉽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국토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을 오로지 자신들만 고뇌하고 자신들만 추진하고 있다는 착각을 버려야 한다. 실제 그런 환시(幻視) 때문에 국민의 여론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다 헌재에 브레이크가 걸린 게 아닌가? 한나라당도 국가정책을 놓고 이데올로기 공격을 멈춰야 한다. 아무리 진정성이 있다 한들 국민들은 수구딴지세력의 발목잡기로만 보기 때문이다.

신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있어서 시민사회단체와 민주노동당도 성찰이 필요하다.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서울시와 경기도, 한나라당과 이 문제로 국정을 혼란스럽게 할 때, 시민단체와 민주노동당이 보인 모습은 외면과 무관심 그 이상이 아니었다. 적극적으로 나서 대안을 만들고 주요 아젠다를 제시하지 못했다.

행정수도 이전 국가경쟁력, 수도권 과밀화 해소, 지방분권화, 기득권세력의 교체 등 멀티풀한 문제를 포함하고 있기에 신중하게 대응해야 한다. 절대 밀어붙인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가경쟁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 밑바닥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KDI조차 “최근 헌법재판소가 내린 수도 이전 위헌 결정이 우리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가늠하기 어려워 무리한 전망을 피하기로 했다”며 2004년 3분기 경제전망보고서를 안 냈다. 이는 환란으로 나라가 혼돈에 처한 97년 이후 7년만에 벌어진 일이다.

대한민국이 재도약을 하려면 2004년을 ‘대한민국 저점의 해’로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신국민협약 같은 국민화합을 위한 대타협의 국가전략이 필요하다. 이 대타협을 이룰 수 있는 리더십을 바로 위임권력인 청와대와 입법부가 다시 회복해야 한다. 위임권력의 리더십 회복과 시민사회의 지원만이 경제는 물론 민주주의마저 나락으로 몰아넣고 있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게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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