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잃어버린 10년으로 표현되는 한국경제의 위기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안으로는 新성장동력의 부재와 양극화, 밖으로는 중국의 부상과 유가-금리-환율 등 3高의 도전이 거세지고 있다. 코리아글로브는 한국경제의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공동체의 흩어진 집합의지를 모아 내는 것이 시급하며, 이를 위해 사회통합을 위한 국민협약을 제안한 바 있다. 그리고 그 구체적인 사업으로 지난 상반기 여론의 점이지대를 형성하기 위해 사회중진 연속간담회를 개최하였으며 이후 노-사, 대기업-중소기업 등 대립의 양쪽 지점에 서 있는 집단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있다.
8월 23일 화요대화마당의 초대 손님인 허영구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는 민주노총 부위원장(1995~2002)을 역임한 대표적인 노동운동가이며, 미국과 일본의 패권주의에 맞선 아시아네트워크(Asia Wide Campaign)의 일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날 토론을 통해 허영구 대표는 해외투기자본에 무방비로 노출된 한국경제를 지켜내고 재벌문제 등 구체적인 경제개혁을 위해서는 슬로건 중심의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구체적인 컨텐츠와 대안을 제시하는 운동이 절실하다고 제안했다. 또 한국사회 뿐 아니라 통일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건강한 대안세력을 형성하기 위한 고민과 노력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것을 주문하였다.
[사전발언 요약]
오늘 주제가 ‘투기자본과 한국경제’인데, 먼저 투기자본이란 금융공학적 관점에서 보면 초단기적 거래에 투입된 자본, 주로 외환시장과 시장 불균형에 따른 일시의 가격 차이에 주목하는 자본이다. 사실 이윤창출을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투자(Investment)와 투기(Speculation)을 분리하는 것은 맞지 않다. 현실적으로 투자에 종속되는 투기는 인정된다.
우리나라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금융시장을 전면개방하면서 현재 국내 주식의 45%(실제 거래 기준의 65%), 5대기업 주식의 60%, 은행 주식의 65〜70%가 외국 펀드가 주주이다. 은행의 경우 세계25대 은행의 경우 5% 이상의 대주주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또 은행을 전면 민영화한 영국의 경우도 정부 지분 30%를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나라 은행은 대부분 외국계 펀드에 넘어간 상태이고 이들 은행은 5년 연속 흑자를 보고 있다. 단기성 대출 위주로 운영하면서 중소기업의 자금난을 촉발시키고 있다.
이러한 원인은 문민정부 시절 OECD 조기 가입조건으로 IMF가 요구한 금융시장 조기 개방을 받아들임으로써 자본수지유발형 외환위기에 대처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결국 IMF금융위기 이후에는 투기자본에 의한 한국경제 지배와 상시적 금융위기의 조건이 마련되고 말았다. 그리고 국민의 정부 시절에는 과도한 외자 유치 신화론(외자 순 기능론)이 정부, 정치권, 언론, 학계, 시민단체에 지배적으로 확산되면서 국내외 자본을 막론하고 주주자본주의만 주창했을 뿐 이해관계당사자들은 배제시켰다.
외환위기 때 정부와 금융감독기관은 투기자본에 편승, 책임을 방기하였다. 투기자본에 공기업, 사기업, 은행을 넘기는데 앞장 섰던 것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서는 은행업을 할 수 없는 투기펀드인 론스타에 외환은행의 경영권까지 넘겨 미국 은행법에 의해 외환은행 미국지점이 모두 폐쇄되었다. 미국에서도 금융과 관련된 법은 아주 강력하다. 이제 우리도 외국계투기자본의 본질을 파악하고 미국이나 영국에서 하는 것만큼이라도 관련법을 강화해야 한다.
투기자본은 단기차익만 노리고 중장기적인 투자를 회피하며, 반대로 국내 재벌들은 경영권 방어에 급급하고 은행의 경우 산업대출을 회피하고 있다. 경영에 대한 책임은 무상감자여야 하나 회사 돈으로 주주의 주식을 매입하여 청산하는 유상감자를 하고 규제를 회피할 목적으로 상장을 폐지하는 등 다양한 행태를 나타내고 있다. 자산매각과 정리해고를 단행하고 비정규직을 확대시킨 장본인이 바로 투기자본인 것이다.
일예로 골드만삭스가 1998년에 진로를 2,742억원에 인수하여 최근 하이트맥주 컨소시움에 3조 4천억원에 매각, 3조원나 되는 이익을 얻었다. 당시 자산관리공사와 부실채권의 이익 실현 시 5대5 분배로 합의 하였으나 일방적으로 무효화를 선언하고 세금을 전혀 내지 않았다. 본사가 외국에 있다는 이유로 금융당국의 사법권 행사도 없었음. 칼라일은 한미은행 매각으로 6천억원, 뉴브릿지캐피털은 제일은행 매각으로 1조 2천억원을 단기 차익을 챙겼고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 시 2조원 내외의 차익이 예상된다.
삼성전자의 2003년도 시가 총액은 20조, 자사주 매입 4조, 배당지급 1조 등 총 25조원 인데 15조원이 주주의 60%를 차지하는 외국인 몫이었음. 실제 국민경제 기여분은 인건비 1조원, 세금 1조원 등 2조원이며 고용 창출 효과는 거의 없었다. 삼성전자 이사의 연봉은 2004년 58억원, 직원 평균 임금 4,900만원으로 120여 배 차이가 나며, 2005년에는 100억원 이상으로 직원 평균 임금의 230배에 달한다. 결국 삼성전자의 성장이 한국경제의 발전과는 별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다음으로 투기자본의 초과이윤과 비정규직 문제가 직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일부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대기업 고임금 정규직 노동자의 책임도 있다는 주장이 있는데, 이는 허구일 뿐이다. 만약 연봉 5천만 원 이상인 노동자를 30만명으로 가정하고 이 중 20%를 양보하면(삭감하거나 또는 2~3년 간 동결) 818만 명 비정규직 노동자에게는 1인당 연간 37만원 정도를 배분할 수 있으므로, 고임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 양보를 통한 비정규직 임금 차별 해소는 허구적인 논리이며 불가능한 얘기이다. 오히려 현대자동차의 경우 2004년 당기순이익 1조 7천억의 10%만 투입하면 비정규직을 전원 정규직화 할 수 있다.
또 한편에서는 사회적 합의(코포라티즘)를 통해 노동자에게는 고용을, 자본에게는 적정한 이윤을 보장하자는 제안을 하고 있지만, 솔직하게 교육, 주택, 의료 등 사회복지가 미비한 상황에서 사회적 합의는 노동자에게는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확대, 그리고 투기자본에게는 무제한적 이윤 보장을 전제로 하고 있을 뿐이다. 사실 자기자본수익률(ROE)이 17.9%로 두자리 수를 기록하는 것은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며 그만큼 한국 노동자들이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파업으로 인해 외국자본이 이탈할 것을 걱정하지만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이제 우리도 투기자본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수 있도록 금융자본법 도입 등 미국이나 영국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 투기자본 거래세(토빈세, 벨기에의 스판세), 횡재세, 예치제 역시 고민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한편 인권, 노동권 준수, 환경보호, 투명경영과 고용창출 등 기업(자본)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을 강조하고 400~500조에 이르는 국내 부동 자금이 생산적 투자 자금으로 전환될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

[간담회 요약]
김남이 : 사전 발표 중에 IMF시기에 미국 정부 차원에서 한국 정부에게 압력을 가했다는 주장을 하셨는데 자본이라면 몰라도 정부 차원에서 가능한 일인가?
허영구 : 정부는 총자본의 관리자이다. 때문에 클린턴 대통령은 미국 경제의 관리자로서 한국정부에 압력을 행사했다. 70년대 이후 IMF는 미국 재무부의 부속기구로 전락했으며 월가의 자본들이 한국에 들어올 때 미국 정부가 압력을 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최배근 : 미국의 90년대 하반기 경제호황은 금융 부분의 호황이었다. 월가와 미국 재무성은 정책 결정 등에서 서로 커뮤니케이션이 활발하다.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캐피탈은 복합자본으로 컨설팅 자문을 통해서 제일은행의 기업 정보를 얻어 금융펀드와 금융시스템 전산회사의 컴퓨터 펀드가 같이 들어왔다. 미국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김남이 : 우리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경제자유구역에 대한 평가는?
허영구 : 한국은 금융시장이 이미 완전 개방되었는데 굳이 경제자유구역 만들 이유가 없다. 노동, 복지 등의 충돌 속에서 굳이 투자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정치적 수사가 많이 작용한 것 같다. 활성화의 전망이 불투명하다.
최배근 : 외국자본의 역할에 대해 시각 차이가 있다. 외국자본에 금융시장을 완전 개방한 이후 기업의 이익과 국민의 이익이 반드시 일치하지는 않는다. 재벌이나 기업에서 싼 이자의 돈을 쓸려고 금융개방을 강력히 요구하였으나 지금은 경영권이 위협받는 속에서 오히려 재벌이 고민에 빠져 있다. 또 근본적인 주주자본주의의 한계 속에서 재벌의 소유지배구조가 혁파되었을 때 누구에게 혜택이 돌아가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솔직히 제일 이득을 보는 곳은 외국자본이다.
결론적으로 재벌개혁 등 과거 잘못을 청산하는 것은 옳은 일인데 그 결과로 국민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살기 힘들어지고 있다. 그 이익이 사회복지 등 국민을 위해 쓰여야 하는데 현재 논의되고 있는 재벌개혁은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국부가 유출되지 않고 사회에 재투입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대타협이 있어야 하는데 재벌과 노동계가 서로 평행선으로 가고 있다.
허영구 : 대기업집단과 재벌의 족벌경영체제는 다르다. 일본은 대기업의 10% 정도만 대주주가 직접 경영하고 나머지 90%는 전문적인 CEO가 경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르다. 삼성, SK, 현대자동차, 두산 등을 보면서 스스로 변화를 기대하기 힘들다. 문제는 재벌개혁의 컨텐츠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슈에 따라 휩쓸린다. 개념부터 정리하고 실천적 대안을 만드는 일이 시급히 필요하다.
참가자 : 김남이, 김석규, 김태식, 김태희, 김현인, 박소희, 박종철, 이주원, 이진한, 임윤옥, 최배근, (KG 아카데미 회원-황현석, 이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