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끝없는 갈등과 대립, 그리고 희망의 부재. 2005년 한국사회가 당면한 위기의 근원에는 책임감과 실력을 갖춘 리더십에 대한 갈망이 담겨져 있다. 그러나 87년 이후 민주화세대로부터 386세대로 이어지는 우리 사회의 집권세력은 여전히 권력게임에서는 프로페셔널을 자처하고 있지만, 국가운영에 있어서는 국민에게 신뢰를 받지 못하는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코리아글로브는 흩어진 공동체의 지혜와 의지를 모아 안팎의 도전을 극복하고 공동체의 비전을 제시할 새로운 리더십을 모색하기 위해 기획화요대화마당 "新리더십과 국가경영"을 마련했다. 이미 고진화(10월18일), 김형주 의원(11월8일)과 김두관 특보(11월22일)를 모시고 국회와 정치권에서 바라보는 우리의 현실과 미래에 대한 고뇌를 나누었으며, 83차 화요대화마당은 기획의 마지막으로 박세일 서울대 교수를 모셨다.
강단에서 청와대 정책수석으로, 그리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하다가 다시 강단으로 돌아온 박교수는 이날 만남에서 건국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에 이어 우리시대의 과제인 선진화를 이루기 위한 주체세력이 절실함을 강조하고 선진화를 위한 정당, 싱크탱크, 국민운동 그리고 이를 앞장서 실천하는 리더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후 한시간 반 동안 진행된 간담회에서는 박교수가 주장하고 있는 공동체자유주의에 대한 철학적 배경을 비롯하여 경제, 교육, 남북문제, 리더십 등에 대한 폭넓은 토론이 진행되었다. 이날 화요대화마당은 사무실을 함께 사용하는 좋은벗들의 5%모임의 회원들과 함께 진행되었다.
[사전발언 요약]
요즘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말씀드리겠다.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발전을 거듭해서, 시간이 가면 선진국이 되리라고 믿었는데 요즘 들어 비관적으로 바뀌고 있다. 과연 선진국이 될 수 있을까? 지금부터 10~15년이 고비 같은데, 고령화속도에 맞춰서 10~15년이 지나면 생산인구가 부족한 사태가 올 것이다. 결국 그 사이에 도약을 해야 한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불을 선진국 진입으로 보면 지금부터 해마다 6% 가깝게 성장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잠재성장률은 4%대로 떨어지고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외부적으로 중국의 급성장 등 도전이 만만치 않다. 냉전질서가 해체 된 이후 동북아에서 새로운 군사안보 질서가 형성되고 있는데, 제대로 된 블루프린트를 가지고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역사적으로 지금이야말로 우리 스스로가 독자적으로 세계전략을 펼 수 있는 유일한 기회라고 본다. 조선조는 중국에, 냉전 때는 미국의 구도속에 있었지만 이제는 우리 나름의 구상과 계획을 가져야 한다.
또 세계화시대에서 국가발전 전략의 핵심이 교육개혁에 있다고 한다면, 사실 무척 더디게 가고 있고 그래서 선진화 진입이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다만, 우리 국민이 가지고 있는 몇 가지 장점을 충분히 활용하면 도약의 가능성이 있는데 문제는 국내외적인 도전을 해결할 만한, 선진화를 이끌어 갈 실력있는 주체세력이 없다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해방 이후 건국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 과정에서는 책임있는 주체세력이 있었다. 우리 시대의 과제는 각 부분을 한단계 업그레이드 시키는 선진화인데 국민적, 시대적 과제를, 그 꿈을 실현할 주체가 없는 게 큰 문제다. 지난 200년간 인류의 정치, 경제, 사회적 경험을 종합하면, 21세기 대한민국의 국가발전 방향은 이미 나와 있다. 아무리 국내외적으로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풀 수 있는 이론적, 역사적인 경험과 방향이 있다. 문제는 주체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여러분과 함께 고민하고 싶은 문제다. 결국은 선진화 주체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가지고 말이다. 산업화의 경륜과 민주화의 열정을 모아서 선진화 세력을 만들어야 하는데, 그럼 어떻게 그들을 만들고 세력화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먼저, 선진정당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관을 가진 정당, 지역구도(지역연합)에 안주해 있거나 소수의 권력지향자들을 위한 이익정당이 아니라 정책과 가치와 비전을 가진 정당이 나와야 한다. 잠시 국회의원을 했었는데, 그 때 여러 동료 의원들에게 한 이야기가 한나라당이 이익집단인지 가치집단인지, 국민에게 우리가 나아갈 방향을 설득하고 지지를 모아서 국민과 함께 미래를 여는 정당인지, 아니면 기존의 정치문화를 답습할 것인지를 물은 적이 있다. 사실은 지금도 똑같은 문제를 느끼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지금 정치적인 보수는 있지만 철학적인 보수는 없다. 현실과 기득권에 안주하는 보수는 있지만 보수가 지향하는 가치에 대한 확신을 가진 철학적 보수가 없는 것이다. 21세기는 보수적인 가치가 리드하는 시대라고 본다. 시장, 자유, 인권, 법치, 세계 등이 그 가치이고 자유와 개인과 창의를 기반으로 해서 국가가 운영될 것이다.
그리고 선진화를 위한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선진화를 위해서는 국민의 의식과 사상을 좀 더 선진적으로 바꿔야 한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정서를 가지고는 빈곤을 극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선진국은 어렵다. 선진국민운동 같은 것이 필요한 이유다. 다른 한편으로는 법과 제도라는 시스템을 바꿔야 할 것이다. 뒷부분이 싱크탱크의 몫이고 앞부분은 정당의 몫이라고 본다. 원내정당화을 정치개혁의 과제로 삼고 있지만 사실 원외정당도 필요하다. 원내정당은 국회에 종속되어 있고 국회안의 대책에 매몰되고 있다. 때문에 보다 큰 원외정당이 필요하다. 한 시대의 새로운 역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원외에서 국민과의 대화와 설득작업이 중요하다. 지금은 그 부분이 취약하다.
선진정당, 선진싱크탱크, 선진국민운동을 전개하기 위해서는 역시 선진적인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 아무나 지도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儒家에서는 修己治人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엘리트주의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대중과 결합한 지도자여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시대 지도자의 덕목은 무엇인가. 先公後私의 공인의식을 가져야 한다. 두 번째는 비전과 정책능력을 가져야 한다. 학자들이나 주변의 비서진에게 대충 물어서 처리하면 된다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지도자가 모든 것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의 자기 확신은 있어야 한다. 자기 것이 되지 않으면 정책과 비전이 자주 바뀌게 마련이고 그러면 국민과 외국에 신뢰를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직해야 한다. 국가를 운영하는 정책에 있어서 정직을 말하는 것이다. 下心과 善聽이 필요하고 求賢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계화 능력이 필요하다. 세계의 지도자와 더불어 인류의 미래를 모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지도자여야 한다. 앞으로 우리나라 국가운영에서 50% 이상이 대외부문의 성공에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싱가폴의 수상은 365일 중에 200일은 해외에서 활동하고 있다.

[간담회 요지]
이주원 : 최근 주장하고 계시는 공동체자유주의와 관련해서, 사실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공동체주의는 공존할 수 없는 대립적인 개념이 아닌지?
박세일 : 먼저 오해를 풀어야 할 것이 공동체주의와 집단주의는 다르다. 공동체주의는 공동체 안에서 개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하는 것이고 집단주의는 집단과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 개인을 무시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지금 20세기적인 보수진보 논쟁에 휩싸여 있는데, 사실 그 단계는 지났다. 그러나 국가를 운영하고 정책을 펼칠 때 그 뒤에는 철학적인 이념이 있게 마련이다. 20세기적인 좌우개념을 버리고 21세기 선진화를 이룩하기 위해서 기본적인 가치와 철학이 무엇인지 정리해야 한다고 보기 때문에 공동체자유주의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지난 200년간 인류의 역사는 물질적 진보의 역사였다. 기하급수적으로 물적 풍요가 늘어났고 정치적으로도 진보했다. 그리고 그 변화의 동인은 자유주의에 있었다. 경제적 자유주의는 시장주의로, 정치적 자유주의는 자유민주주의로 발전했다. 때문에 21세기 국가발전의 기본 원리도 자유주의에 있다고 판단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존재론적으로 사회속에 있게 마련이고 경제적, 역사적으로 공동체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다. 환경공동체, 생태공동체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자유와 창의를 극대화하되, 관계적인 측면도 역시 강조되어야 하기 때문에 21세기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사회 각 부분에서 개인의 자유의 확대를 꾀하고, 그것이 이기적인 개인주의로 빠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적인 배려와 보완이 필요하다. 정책을 풀어가는 데 있어서도 먼저 자유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그 다음에 공동체적인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 문제를 풀어가는 길이기도 하다.
우리사회에서는 자유주의가 왜곡되어 왔다. 생각해보면, 해방 후 정치적 자유주의가 시작은 되었는데 남북의 대립 속에서 방어적 자유주의가 생기고 이것이 반공주의가 되면서 왜곡 일탈되었다.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거쳐서 회복의 국면에 접어들었는데 또 다시 민중민주주의가 나타나면서 일탈이 되었다. 이제야 말로 제대로 된 자유주의로 나가야 한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시장경제로 시작은 되었지만 산업화의 압축성장으로 관치적 요소가 강했다. 엄밀한 의미에서 경제적 자유주의가 왜곡되었다. 그리고 민주화를 거치면서 평등주의적 개혁관이 나타났다. 경제적 자유주의 역시 일탈과 왜곡을 경험하면서 지금까지 왔다고 본다.
최근에 하버드대에서 출간된 『Spirit of Capitalism』이라는 책에서 지난 2~300년간 각국의 경제성장 동인을 분석했는데, 결론은 애국심이었다. 독일이나 일본 뿐 아니라 불란서나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통합을 하고 애국주의를 가지고 다시 한 번 발전하자고 이런 얘기를 많이 한다.
이호준 : 말씀 중에 우리 국민들이 저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는데?
박세일 : 會通思想을 전통적으로 가지고 있다. 좌우, 정반, 흑백이라는 것은 한국적인 사상이 아니다. 시비를 하나로 묶는 전통이 강했다고 본다. 두 번째는 正名思想이다.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한다는 것이다. 명분을 가지고 자기가 할 것을 지키고 이익보다는 대의를 지켜가는 것은 21세기에도 필요하다고 본다. 마지막으로 무척 역동적이다. 부지런하고 다이나믹한 것이 우리의 장점이라고 평소에 생각해왔다.
5%모임 : 시장의 자율적 기능을 강조하는 시대이고, 정치나 경제, 사회 역시 마찬가지로 시장이 이끌어가는 형국인데, 과연 리더십이 왜 필요한가?
박세일 :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자유주의가 충만할수록 리더십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민주화에는 성공했는데, 자유화에 성공할 지는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직접선거와 다수결로 정부를 바꿀 수 있는 것이고 자유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기본적 인권이 확실히 보장되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된다고 해서 자유주의가 보장된다고 볼 수는 없다. 대표적으로 민주적으로 선출된 히틀러가 그랬다.
개인과 창의를 담보하는 자유주의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엄격한 법치주의가 실현되어야 한다. 또 사법부의 독립,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언론의 자유 등의 제도가 발전되어야 한다. 그런 부분을 지금부터 제대로 만들어가야 한다. 민주화를 통해서 소수의 지배에서 다수의 지배로 변했다. 그러나 다수의 지배가 오히려 소수의 인권을 억압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된다.
유럽의 경우에는 1200년대에 자유주의가 시작되고 20세기에 들어서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비유럽국가에서는 민주주의가 먼저 시작되었고 자유주의적 전통이 없기 때문에 비자유주의적인 민주주의가 많다. 잘못되면 선동가에 의해서 포퓰리즘으로 갈 가능성이 많고 또 남미의 예처럼 실패한 경우도 많다. 그래서 더욱 리더십이 중요하다.
특히 공익을 고민하는 리더십이 절실하다. 지금 한국의 정당은 국가이익보다 당리당략을 자연스럽게 지키고 있다. 어떤 것이 국익을 위한 것인지 고민하는 경우가 적다.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공무원들의 최대 고민은 자기 부처의 영향력 확대다. 우리 사회 속에 누군가는 공익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시민운동 속에 그런 고민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공익을 지키는 사람과 제도가 나와야 한다. 선진화, 민주화, 자유화의 큰 문제는 국가를 경영하고 공동체 발전에 있어서 전체적인 이익과 장기적인 이익을 지킬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점점 더 부분적 이익과 단기적 이익이 성행하는 시대가 되고 있고 그 공동체는 피폐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민주주의가 성공한다는 보장이 없다.
그것을 막기 위한 제도가 몇 가지 있는데, 대법원 판사가 그렇다. 그 임기가 10~20년, 또는 종신제이고 그 사람들은 투표로 뽑지 않는다. 고도의 전문성과 공익을 위해서, 그리고 민주주의의 위험성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이다. 그래서 사법부의 독립이 중요하다. 중앙은행의 독립도 마찬가지다. 제도로서도 공익과 국익을 지키는 제도가 있어야 되고, 각 사회 조직의 리더들 중에서도 사익보다는 공익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을 때 그 사회는 발전한다고 생각한다.
5%모임 : 3김 이후에도 지역주의가 계속되고 있고, 선진정책정당이 필요하지만 이상적이라는 판단도 있다. 정당이란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얻어야 하고 물적 기반이 필요한데 이상적인 생각만으로는 어려울 것이다.
박세일 : 솔직히 이상주의적이다. 그러나 지금처럼 패러다임이 바뀌는, 가치판단이 바뀌는 혼란스러운 시대에는 이상주의적인 것이 가장 현실적인 것일 수 있다. 판단이 안 될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한국정치에서 지역주의 극복은 선거제도를 통해서 할 수도 있지만, 정책정당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지역연합이 아니라 정책연합을 통해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정치속에 국민, 민생이 없는데 이는 한국정치에 국민을 위한 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말하는 연정도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경제, 교육, 노후문제 등 여야간에 차별이 없는 구체적인 정책을 가지고 정책연합을 제안했다면 국민적 명분과 실현 가능성이 있었다.
각 정당이 자기의 정체성을 세워야 한다. 사민주의 정당도 필요하고 양심있는 보수로서 자유주의 정당도 필요하다. 그래야 국민이 편해진다. 지금까지 권력투쟁적 정치에서 국가경영정치로 바꾸려면 정치 가운데 정책이 있어야 한다. 정책정당이 그 해답이다.
김윤 : 선진화를 말씀하시는데 선진의 기준은 무엇인지?
박세일 : 경제적으로는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정치적으로는 명실공히 자유민주주의가 되어야 한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가 많지만, 21세기 세계화 정보화시대에 각 부분에서 선진국민이 되는 것, 선진문화를 가진 국가, 세계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수준이 되어야 진정한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안에서 세계를 내다보고 있다. 선진국은 밖에서 한국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한다. 얼마 전 캐나다 외교정책에 대한 학자들의 토론을 본 적이 있는데, 어느 날 캐나다가 없어졌을 때 세계인들은 무엇을 느낄 것인가에 대한 논의를 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캐나다나 캐나다 국민들에 대해서 세계인들은 어떤 이미지를 가지고 있을지에 대한 논의에서 그들의 외교전략은 출발하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약에 대한민국이 어느 날 없어졌을 때 주변국이나 세계인들이 안타까워 할 것인지,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지에 대한 고민과 계획이 필요하다.

5%모임 : 더 이상 북한을 빼놓고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말할 수 없는 상황이다. 북한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지?
박세일 : 남북문제는 민족문제이고 동북아의 장래가 걸린 중요한 문제다. 개인적으로 잘못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정치지도자들이 남북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는 것이다. 그것으로부터 왜곡과 일탈이 일어났다. 여야를 막론하고 북한도 마찬가지다. 민족의 미래를 깊이 고민하고 원칙을 지키기 보다는 개인적인 정치적 입지를 위해 이용해왔다. 때문에 모든 정책이 올바로 서고 집행될 수 없는 것이다.
한 가지 더 말씀드리면, 북한은 정치적으로는 병영국가, 경제적으로는 실패한 국가라는 사실이다. 이것을 정상국가로 변화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통일이란 바로 북한을 변화시키고 정상화시키는 과정이어야 하고 무척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햇볕정책이건 봉쇄정책이건 수단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정책의 목적은 북한의 변화를 유도, 지원, 협력, 관리하는 것에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 미국과 중국과 사전조율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지금쯤 한국에 유능한 외교관들이 있다면 Post김정일에 대한 그림을 그릴 수 있어야 하고 또 그 그림을 가지고 미국과 중국을 설득하고 함께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북한을 진정한 대화와 협력과 변화의 파트너로 삼는다고 하더라도 부정론은 부정론대로 긍정론은 긍정론대로 각각에 맞는 전략이 나와야 한다. 특히 과거에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점에 대해서는 정확히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김대중 전대통령을 존경하지만 결정적으로 그 분이 잘못한 것이 2000년 6.15공동선언에서 92년 비핵화선언과 기본합의서를 왜 북한이 지키지 않았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92년 당시 기본합의서를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이 있었다. 또 양쪽 정부와 국회가 비준한 것인데, 민족적 신뢰 차원에서도 왜 합의를 실천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지적이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그것을 덮고 넘어간 것은 민족문제를 민족의 이익이 아니라 또 다른 시각에서 풀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홍상영 : 최근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싸고 윤리적인 문제제기가 이어지면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윤리냐, 국익이냐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고 또 종교적인 대립까지 진행되는 양상인데?
박세일 : 민족적인 감정이 앞설 수가 있는데,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객관적으로 억제되는 것이 옳을 것이다. 21세기 세계화 시대에는 우리의 가치판단이나 사실판단을 가능하면 세계의 문명표준에 맞추는 노력을 해야 한다.
물론 글로벌스탠더드 속에 아메리칸스탠더드가 적지 않다. 그것이 불만과 비판의 대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별국가의 특성을 뺀 글로벌스탠더드가 계속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글로벌스탠더드가 뭔지 참고 하면서 우리의 민족적인 감정을 적용, 적응하는 차원에서 문제를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황우석 교수 문제 뿐 아니라 앞으로 세계화 과정에서 민족고유의 전통과 문화를 세계와 어떻게 종합시킬 것인가가 어느 나라나 큰 문제이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다. 이런 문명, 문화의 충돌을 극복하기 위해서 앞으로 가능하면 민족 고유의 전통만큼이나 글로벌스탠더드에 대한 지식과 고뇌가 필요할 것이다.
김현인 : 뉴라이트 운동에 대한 판단은?
박세일 : 뉴라이트는 구보수에 대한 비판과 반성에서 나온 움직이라고 판단한다. 그래서 뉴라이트 운동을 하는 분들에게는 보다 철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고 본다. 사실 우리나라의 보수는 건국 이후 산업화시대까지 우리 사회를 끌고 왔다. 1963년 100불에서 1990년 초에 1만불까지 올라간 역사적 기록을 다른 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엄청난 성공임에는 틀림이 없는데 그 속에서도 많은 질곡이 있었다.
그러나 그 역사적 단계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이제는 민주, 자유, 보수라는 가치의 문제 등 깊은 역사적 자기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그것이 뉴라이트라고 본다. 그래서 같은 의미에서 뉴레프트가 나와야 된다고 주장한다. 80년대 들어오면서 민주화투쟁에 소위 친북적인 요소가 등장했다. 그 역사적 상황은 이해하지만 이제는 빨리 정리해야 된다.
이제는 합리적인 뉴레프트가 나와야 한다. 그래서 뉴라이트와 정책경쟁으로 들어가야 한다. 교육문제, 양극화문제, 경제성장의 신동력문제 등 구체적으로 문제를 파고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박현선 : 시장과 공익이 공존할 수 있는지, 또 대한민국 모든 국민의 화두인 교육문제에 대한 의견은?
박세일 : 시장적 결과가 과연 공익인가. 이건 근본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시장에서의 개인은 사적인 이해관계를 추구하고 이기심의 극대화를 위해 움직인다. 근대의 등장기에 많은 사회, 정치 철학자가 고민했던 주제다. 중세의 질서는 권위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인 질서였는데, 독립되고 자유롭고 욕망이 해방된 개인이 사회를 이뤄갈 때 그 사회가 갈등없이 발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뇌가 그것이었다.
저는 시장적 결과가 공익이 될 수도 있고 안 될 수도 있다고 본다. 개인의 이기심의 추구가 공익을 낳을 수도 낳지 않을 수도 있다. 시장적 질서가 자유경쟁적일 때는 공익적이고 시장적 질서가 독점, 과점적일 때는 그렇지 않다. 좋은 물건을 싸게 공급해서 돈을 버는 방법,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것은 시장질서가 경쟁적일 때 가능하다. 또 하나 경쟁을 줄이고 독점을 만들어서 돈을 버는 방법, 즉 물건의 질이나 소비자의 만족과 무관한 방법도 있다. 따라서 독점은 사익이 공익으로 연결되지 않는다.
우리는 자유경쟁적 시장질서를 중요한 경제성장의 동력으로 인정하고 재벌에 대한 비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과거보다 재벌에 대한 규제가 불필요한 시대로 가고 있다는 사실을 꼭 말하고 싶다. 세계시장으로 열리면서 독점이 어려운 시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교육개혁에 대해서는 얘기를 하기 앞서, 요즘 양극화에 대한 말을 많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양극화라는 문제설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앞서가는 사람도 문제가 있고 뒤에 오는 사람도 문제가 있기 때문에 중간으로 평균으로 지향하게 된다. 미국의 빌게이츠를 보면, 그 사람은 더 앞서가야 한다. 삼성이 앞서갈수록 한국이 발전한다. 앞서가는 사람과 뒤떨어진 사람의 차이가 커서 문제라는 시각이나 사고는 세계화시대에 맞지 않는다. 세계화시대에는 양극화가 아니라 신빈곤층, 과거와 다른 새로운 어려운 사람들이 문제고 그것을 풀어야 한다. 그래야 구체적인 대책이 가능하다.
교육정책도 마찬가지다. 서울대와 지방대와의 격차를 문제 삼아서는 안된다. 서울대가 우수한 인재를 독점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서울대가 세계인류대학과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을 문제제기 해야 한다. 동경대, 북경대가 10위권인데 서울대는 간신히 100위권에 들었다. 결국 앞서가는 부분은 세계 최고가 되게 해야 한다. 그리고 다음으로 공동체적인 관점에서 지방의 낙후된 곳이나 저소득층 자녀들의 교육문제, 또 학문에서 기초과학이나 문사철의 기피현상에 대해서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보완하는 큰 방향으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김석규 : 탈냉전 이후 우리에게 많은 기회가 있었는데 스스로 현명하지 못해서 고통과 망신을 당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통합과 더불어 미래에 대한 상상력이 많이 필요하고 20세기적인 유물인 진보-보수, 좌-우, 민족주의는 폐기되어야 하며, 87체제 역시 극복되어야 한다. 또 최근들어 뉴라이트, 뉴레프트, 선진화의 얘기가 사실은 꽤 오래전에 서구사회에서 논의되었고 국내에서도 지나간 패러다임이며, 그것을 주장하는 세력들 역시 국민들이 보기에는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다면 과연 새로운 세력은 어디서 어떻게 나와야 하는지?
박세일 : 사람은 과거를 반성하고 개선하면서 살게 마련이다. 과거에 흠집이 있는 사람도 같이 털어내고 보듬어 안고, 애국심으로 뭉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대한민국은 많은 인재를 가지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 서로 장단점을 안아주면서, 다만 완전히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출발해서 새로운 발전원리와 이념으로 뭉치는 큰 전기를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진보나 좌파를 좋아하는 이유가 자기 자신의 문제보다 이웃의 문제로 마음을 아파했던 사람, 공인의식이 많은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을 시대에 맞는 생각으로 채워서 올바른 방향으로 함께 가면 사회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대부분의 문제들이 인류의 역사, 우리의 교훈을 솔직히 인정하고 나가면 풀 수 있는 문제들이다. 오히려 문제는 모든 정권들이 과거로부터 배우려고 하지 않고 무엇인가 과거와 차단하고 단절하고 차별화 하려고 하다 보니 연속성이 떨어지고, 축적이 사려져서 문제다. 그 피해는 국민에게 고스란히 돌아갔다. 솔직하게 과거로부터 배우기를 권하고 싶다.
김태희 : 세계화시대의 글로벌스탠더드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글로벌스탠더드라는 것이 대부분 선진국의 기준들이고, 우리나라를 비롯해 뒤따라가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 수용을 둘러싸고 갈등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박세일 : 두가지 측면에서 세계화에 접근해야 한다고 본다. 하나는 자주적 세계화이고 하나는 민주적 세계화다.
자주적 세계화는 글로벌스탠더드와 국내의 지역적 상황을 조화시키는 문제에서 자주적인 능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글로벌스탠더드를 적절하게 자기의 문화와 결합하는 것은 철저하게 우리의 자주적인 능력에 달려있다. IMF의 요구에 대해서도 우리가 똑똑하면 취사선택이 가능하다. 우리가 몰라서 그냥 당한 경우가 많다. 솔직히 그 사람들을 욕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근거와 연구를 가지고 대안을 제시했다면 우리가 요구한 방향으로 갈 수도 있었다. 노사정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소위 유럽의 코포라티즘인데, 우리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 다음으로 민주적 세계화는 세계화의 과실을 국내에 골고루 퍼뜨리는 것이다. 한마디로 교육부분에서 가능할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사회과학은 주자학이다. 한마디로 허학(虛學)이다. 이론은 서구적인 것이고 실무는 따로 가고 있다. 그래서 외국의 제도를 받아들일 때, 우리 수준에 맞게 수정하고 조정하지 못한다. 국가정책을 이론적이면서도 실무적으로 다루는 씽크탱크가 절실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한국에 행정대학원이 많은데 실제 행정을 해 본 사람이 별로 없다. 실무와 이론을 함께하는 연구기관이나 교육기관이 없기 때문에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외국처럼 전직 장,차관 등 실무경험을 가진 이들이 함께 연구하고 토론하면서 이론과 실무가 같이 가는 교육과정이나 연구기관이 절실하다.
참가회원 : 김석규, 김태희, 김현인, 박종화, 박종희, 박현선, 박현식, 손종도, 윤여진, 이근주, 이문경, 이주원, 이호준, 임윤옥, 정낙근, 조민, 최성주, 허건, 홍상영 외 좋은벗들의 5%모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