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북핵의 정치경제학</b>

by KG posted Nov 05, 2004
북핵의 정치경제학
- 북핵의 새로운 斷想 -

정낙근(KoreaGlobe 운영위원, KP2010 분과, 여의도연구소 연구위원)



I. 시작하는 말


  2002년 10월 제2차 북핵위기가 발생하였다. 북핵문제는 한국전쟁이후 대한민국이 당면한 최대의 안보위협이자 한반도 현상변경의 기폭제가 될 수 있는 중대사안이다. 북한핵은 북한과 미국 양국간의 최대의 현안이 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6자회담 참여국 모두에게 중요한 외교·안보상 현안이다.

  북한은 핵무기에 병적인 집착을 보여왔다. 북한이 제네바 기본합의를 위반하면서 비밀리에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다는 주장은 1990년대부터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미의회의 대북정책검토그룹이 작성한 보고서는 북한이 1994년이후 핵개발을 위해 파키스탄과 러시아 등으로부터 지원을 모색해왔고 유럽가 일본에서 이중용도품목을 획득하려 했다고 밝혔다. North Korea Advisory Group, 1999, p.5 참조.)

  2003년 7월 9일 고영구 국정원장은 국회정보위원회에서의 답변을 통해 북한이 제네바합의 체결이후 중단했던 고폭실험을 1997년부터 영변의 북서쪽 40㎞ 지점에 있는 평북 구성시 용덕동에서 재개했고, 2002년 9월까지 70여차례 고폭실험을 실시했으며, 우리 정부는 이런 사실을 1998년 4월부터 파악하고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동아일보」2003. 7. 10.) 또 2002년 10월 고농축우라늄(Highly Enriched Uranium: HEU) 프로그램을 둘러싸고 북핵 위기가 발생하자, 우리 정부는 북한의 HEU 프로그램의 존재를 인지하고 추적해왔다는 사실을 처음 밝혔다. (「동아일보」2002. 10. 21.)

  북한은 내부적으로 집요하게 핵개발을 추진하면서도 겉으로는 철저히 부인하는 기만전술을 구사해왔다. (2003년 4월 3자회담에서 북한 당국자가 핵보유를 시인하기 전까지 핵문제에 대한 북한의 공식입장은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었다.)  이처럼 북한이 핵개발에 집착하는 까닭은 핵카드가 북한의 생존전략 수행에 상당한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그렇다고 북한의 전략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번 제2차 북핵사태를 90년대 초반의 제1차 사태와 비교할 때, 중요한 변화가 있다. (전봉근,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북핵 해결 전략,”『국가전략포럼』(세종연구소, 2004. 6), p.56 참조.)

  첫째, 6자회담이 미·북간 회담을 대신한 것이다. 둘째,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남북간에도 핵문제 협의가 가능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더 이상 90년대와 같이 한국의 참여가 배제된 미·북간 직거래는 힘들 것 같다. 셋째, 과거에 비해 북한의 대외 의존도가 심화되고 경제·사회체제도 상당 정도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넷째, 북한식 벼랑끝 전술이 거의 사라졌다는 점이다. 북한으로서도 성과가 보장된다는 확신이 없다면 상당한 자기 희생을 수반하는 벼랑끝 전술을 선택할 동기가 약해질 것이다.

  그러면 ‘순환적으로’ (전봉근 박사는 북핵관련 위기발생과 대응의 순환주기를 분석하였다. 그에 따르면, 북핵 순환주기는 ㈀ 북한의 핵도발 ㈁ 북핵위기 조성 ㈂ 일괄타결식 핵합의 ㈃ 핵합의 붕괴순이며, 대응의 순환주기는 ㈀ 북한의 IAEA 사찰 거부 ㈁ NPT 탈퇴 ㈂ IAEA 사찰관 추방 ㈃ 재처리시설 재가동 ㈄ 상대방의 사후적 대응조치가 따르는 식이다. 전봉근, 앞의 글, p.62 참조.) 발생하는 북핵위기는 과연 해결 가능할 것인가? 듀자릭이 내린 결론은 의미심장하다. “북한의 핵문제는 당뇨병과 같은 만성질환이다. 북한이 존속하는 한, 우리는 이 질병과 함께 있어야 할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춘근, “한반도의 위기: 북한핵에 대한 인접국의 입장,”「국제이슈해설」(자유기업원, 2004. 10. 26), p.1에서 재인용.) 이번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그 결과가 어떠하든 북핵 문제를 ‘새로운 문제’로 다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될 것 같다.

  북핵 문제에 대한 북한과 미국의 ‘진정한’ 의도는 무엇인가? 구태의연한 질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북핵문제가 해결은커녕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한 것을 보면, 북핵의 ‘진정한’ 의도에 대해 우리가 간과하거나 오독(misreading)하는 점이 있지 않나 의문이 생긴다. 본고에서는 기존의 연구성과에 따른 북핵 관련 미·북의 입장을 간략히 정리하고, 북핵문제의 ‘진정한’ 해결 시나리오를 추상해보고자 한다.


Ⅱ. 북한의 핵보유 논리


1. 핵포기 불가론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보유하려는 의도에 대한 해석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북한의 체제안전을 위해서 어떠한 경우에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핵포기 불가론이고, 다른 하나는 핵의 보유는 체제안전과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협상용이므로 조건만 맞으면 포기할 수 있다는 핵포기 가능론이다.

  북한의 의도에 대한 해석의 차이는 북한 김정일 정권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와 연결된다. 포기불가론 해석이 김정일을 불신하는 보수강경파에게서 주로 발견된다면, 포기가능론은 김정일을 합리적 인물로 보는 온건파 내지 햇볕론자의 입장이다.

  포기불가론 입장은 핵의 사용여부를 두고 두 갈래로 나뉜다. 핵무기를 가지게 된 이상 결국은 사용하게 될 것이라는 사용불가피론과, 핵무기의 사용은 혈맹인 중국마저도 등을 돌리게 만들어 김정일과 북한을 파멸로 이끌 것이므로 억지력으로만 활용할 뿐 결코 사용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용불가론이다.

  북한의 핵 보유와 사용 여부는 김정일의 성격과 북한체제의 특성, 북핵의 억지력 수준 등에 달려있다. 황장엽 선생은 김정일이 핵을 보유하려 하겠지만 사용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단언한다. 핵포기불가·사용불가론의 입장이다. 황선생의 핵포기 불가론은, 북한이 사상우선의 나라(체제)로서 체제 자체가 경직되어 있다는 데에서 근거를 찾고 있다. 김정일은 체제유지를 위해서 아무도 넘보지 못할 강력한 무기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갖고 있는데, 하나는 주체사상이라는 사상전 무기이고 다른 하나는 핵무기와 미사일이라는 것이다.

  포기불가론의 다른 해석은, 최근 미국이 북한에 대해 요구한 ‘리비아식 전면 핵포기’에 대한 북한의 반응에서 볼 수 있다. 북한은 리비아식 해법을 수용하지 않기로 결심을 굳힌 것 같다. 김정일은 리비아의 변화를 보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의 입장과는 매우 상이한 교훈을 얻은 것으로 보인다. 곧 이라크의 후세인이 감옥신세를 지는 것을 지켜본 김정일은 미국의 공격에 대한 최선의 방책이 핵무기뿐이라고 여기고 있고, 핵능력이 크면 클수록 생존전략에 유리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김정일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기는커녕, 핵무기 개발을 선전하기까지 한다.

  또 김정일은 부시대통령 재선 이후의 대북 압박에 대비한 생존전략의 일환으로 핵협상으로부터 핵무장 방향으로 정책선택을 급선회한 것으로 분석된다. 김정일은 부시가 재선에 성공하고 나면 태도를 돌변하여 북한의 리비아식 핵포기 거부를 명분으로 6자회담 결렬을 발표하고 북한에 대해 전방위적 압박을 가하는 수순을 밟을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그렇게 될 경우,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 기대하던 체제 안전보장이나 경제지원은 고사하고 자칫 잘못하면 미국에 대한 잠재적 전쟁억지력인 핵보유의 기회마저 상실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김정일이 핵무장의 길로 방향을 선회한다면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더불어 김정일은 핵무장을 강행할 경우 미국이 주변국의 심각한 우려를 의식해서 북폭 카드를 사용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같다. 따라서 김정일은 주변정세가 자신에게 불리하지 않다고 보고 있으며, 미국의 대북 군사공격 가능성도 낮다고 평가하는 것 같다.

  핵 사용불가론의 근거는 김정일의 성격과 두뇌, 수령절대주의 체제의 속성에서 찾는 분석도 있다. 먼저 김정일은 성격상 자기 보호본능이 매우 강해서 핵무기를 사용할 만큼 대범(?)하지 못하고, 또 두뇌가 영리해서 승산이 없는 게임은 결코 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를 제시한다. 특히 주목할만한 해석은 수령절대주의 체제의 구조에서 찾는 경우다. (황장엽 선생의 해석.) 곧, 수령절대주의 체제는 수령이 중심이 되고 인민이 수령을 결사 옹위하는 체제이다. 인민은 수령을 위해 죽을 수 있으나, 수령은 인민을 영도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죽어서는 안된다. 인민을 영도해야 하는 수령이 핵무기 사용으로 자칫 상대방의 공격타깃이 되어 먼저 희생되면 북한체제는 무너진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김정일은 핵무기를 사용한 도발을 감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수령절대주의 체제의 ‘수령론’을 적용한 의미있는 해석이다.

  북한의 핵 보유는 미국보다는 남한을 겨냥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소규모의 핵무기를 보유한 신생 핵국이 다수의 핵무기를 보유한 기존 핵국에 대항하는 경우에는 기존 핵국의 대규모 핵 보복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신생 핵국인 북한이 핵강국 미국을 상대로 핵무기를 사용할 수 없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러나 소수의 핵을 보유한 핵국은 남한과 같은 비핵국에 대해서는 핵 보복을 우려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얼마든지 핵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북한의 핵 보유는 전술적 차원에서 남한 군수뇌부의 목덜미를 잡아당겨 군의 사기와 전쟁수행 의지를 꺾어버리는 효과가 생기는 것이다. (전성훈, “핵보유국 북한과 한국의 선택,”『국가전략』제10권 3호 (세종연구소, 2004년 가을), p.10 참조.)

2. 핵포기 가능론

  다음으로, 북한핵은 체제보장과 경제적 이익을 얻기 위한 협상용일 뿐, 핵무기 보유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고 보는 입장에 관한 것이다. 이러한 해석은 김정일이 매우 합리적이라는 인물 분석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예컨대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을 ‘식견있는 지도자’ ‘대화가 가능한 인물’ 등 긍정적인 인물평을 한 바 있다. 김대중 정부부터 지금까지 햇볕론을 지지하는 세력들에게 거의 일관되고 있는 김정일관이다. 여기에는 김정일을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친북좌파세력도 있겠지만, 북한과의 협상이라는 현실적 목적 달성을 위해 ‘의도적으로’ 김정일을 합리적 인물로 명시하는 경우도 있다. 후자의 평가가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협상의 결과가 북한의 진정한 변화로 나타날 때이다.

  그럼 북한이 핵을 협상용으로 활용한다면 무엇을 얻기 위한 것일까? 두말할 필요없이 체제의 안전보장과 경제적 이익이다. 북한은 6자회담에서 북핵문제를 ‘대화’를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하여 미국과 적대관계를 해소하고 평화공존을 이룩하여 정권과 체제의 생존을 확보하겠다는 의도다. 다시 말해 미국과의 불가침조약 체결을 통해 안보를 확보하고, 미국과의 외교관계 수립을 통해 양국관계를 정상화하며, 일본 및 남한과의 경제거래에 대해 미국이 더 이상 방해하지 않도록 함으로써 이들 국가로부터 경제협력을 얻어 자신의 생존을 확보하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은 핵 보유를 위해 치러야 하는 비용이 핵 보유로부터 얻는 이익보다 훨씬 크기 때문에 핵을 포기하되 안전보장과 경제협력을 보장받을 수 있는 대용물을 얻어낼 수만 있다면 핵을 포기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백학순, “북한과 미국의 북핵문제 해결전략,”「국가전략포럼」(세종연구소, 2004. 6), pp.42-3.) 6자회담 제3차 회의에서 북한은 ‘동결과 보상’안을 내어 놓았다. 이것은 북한이 미국의 CVID는 거부하지만, 폐기를 전제로 핵개발을 동결할 용의는 있다는 것이며, 그 대가로 보상과 지원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합리적 입장에 따른 북핵 협상론과는 성격이 다른 벼랑끝 협상론적 해석도 가능하다. 김정일은 핵능력 과시 이후 국제사회의 대북 압박이 강해지면 최후수단으로 미국과의 대타협을 통해 ‘협상용 핵’을 포기하고 그 대가로 경제지원과 체제보장, 한반도에서의 정치적 주도권 확보에 주력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핵협상의 성공이 북한의 핵 포기를 의미한다면, 그 가능성은 첫째, 북한이 핵 포기의 반대급부 확보가 체제생존과 대외전략에 유리하다고 판단할 경우와 둘째, 북한이 위장된 핵 포기를 통해 반대급부를 받아내고 나머지 핵은 숨겨놓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경우다. 전자는 김정일이 핵 포기로 받아낼 양보가 대남 통일전선전술을 통한 남남갈등의 격화, 한미관계 이간, 연방제 통일 달성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경우다.

  더욱 위험한 시나리오는 둘째 경우다. 협상용 핵만 포기하고 비축용 핵은 숨겨놓을 경우, 김정일은 체제보장·적화통일·핵 보유의 3중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그럴 경우 북핵의 완전한 제거도 실패하고 엄청난 대가도 제공함으로써 한반도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김정일이 핵을 포기할 것인가의 물음에 대해 김정일 외에는 단언적으로 답할 사람은 없다. 김정일 자신도 답을 정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분석해볼 때, 김정일은 미국이 요구하는 CVID를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다만 기왕 만들어 놓은 1,2~3,4개의 과거핵은 그대로 둔 상태에서, 앞으로 김정일이 핵실험을 하거나 공개적으로 보유를 선언하지 않고, 과거 핵 프로그램과 핵무기에 대해 사찰을 받고 폐기하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손광주, “김정일의 생존전략,”『시대정신』25 (2004 여름), pp.172-3 참조.)

  문제는 HEU 프로그램과 이 방식에 따라 생산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핵무기다. 이 점에 대해서는 작년부터 북한이 줄곧 HEU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다며 말을 바꾸고 있고, 중국도 북한의 HEU 프로그램에 대해 모른다는 발언 (2004년 6월 8일 저우원중 중국 외교부 미국담당 부국장의 뉴욕 타임즈 인터뷰 참조.) 을 하고 있는 것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만일 내부적으로는 북한이 핵을 갖고 있지만 형식적으로는 북한 핵이 폐기되는 상황을 맞게 될 경우, 중국은 앞으로 김정일이 핵을 갖고 장난치지 못하도록 북핵문제를 중국이 책임지고 계속 ‘안고 가게’ 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물론 미국이 북한의 HEU에 대한 명백한 물증을 확보하다면 이같은 방식은 어려울 것이다. (북한이 HEU 프로그램을 보상을 위한 협상카드로 사용하지 말고 어느 단계에서 북한의 협조성과 신뢰성을 과시할 수 있는 카드로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도 있다. 백학순, 앞의 글, p.51 참조.)


Ⅲ. 미국의 북핵전략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핵개발 시도 자체가 지역의 안정과 국제평화에 위협이라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다. 미국은 북핵문제를 1990년대에는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군사질서에 불안정을 가져다주는 핵확산 문제로 다루었다. 9.11 테러이후 미국은 북핵문제를 反대량살상무기 테러전의 시각에서 접근하고 있다. 부시 대통령이 발표한 ‘반테러 국가전략(National Strategy for Combating Terrorism)’은 21세기 테러조직의 지구 그물망화, 첨단기술화, 대량살상무기 사용가능화의 새로운 변화를 지적하고 있다. 또 반테러전의 기본전략으로 테러조직을 파괴하고 테러조직의 지원을 막고 테러가 자라날 수 있는 기반을 약화시키고 마지막으로 미국을 방어하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http://www.whitehouse.gov.(2003. 2))

  부시 대통령은 G8 정상회담 참석차 폴란드의 크라코우에서 평화의 최대의 적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이라고 지적하고, 이러한 확산과 싸우기 위한 새로운 노력으로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을 추진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 구상은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기 위해 외교적 대화를 가능한 한 추진하겠지만, 동시에 미국과 반테러 동맹국들은 필요할 경우 경제제재, 저지와 나포, 선제 군사력 등과 같은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Bolton, John. 2004. Under Secretary for Arms Control and International Security/Testimony to the House International Relations Committee(June 4), http://www.state.gov.)

  미국은 북한의 의무 이행과 당근 제공을 교환하는 전례를 답습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2001년 1월 29일 북한에 대한 부시 대통령의 ‘악의 축’ 명명은 그의 기독교 근본주의적 입장에 따라 미국은 ‘악마’인 북한에게 어떠한 대가도 지불할 수 없다는 원칙을 상징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의 북핵 해결 입장은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omplete, Verifiable and Irreversible Dismantlement: CVID)” 원칙에 기반하고 있다. ‘완전하다’는 것은 1차 북핵위기 당시의 제네바합의와 같이 북한의 핵 활동을 동결하는 선에서 그치거나 미진한 부분을 후일의 해결과제로 남겨두는 시행착오를 범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볼튼 미 국무부 차관은 완전한 폐기를 이루기 위해 플루토늄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HEU 프로그램의 모든 요소도 폐기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Bolton, John. 2004. The Bush Administration's Nonproliferation Policy: Successes and Future Challenges, Testimony to the House International Relations Committee(March 30)) 이에 북한은 HEU 문제에 대해 미국이 증거를 제시하면 기술적인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2004. 3. 10 북한 외무성 대변인 담화,「로동신문」2004. 3. 11.)

  또 하나 미국이 채택하고 있는 북핵문제 해결전략은 ‘6자회담을 통한 외교적 해결’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는 이라크와 같은 침공을 하지 않고 정권교체를 하지 않겠으며, 기본적으로 6자회담의 틀에 의거하여 외교적인 대화와 협상을 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지금까지 6자회담은 세차례의 본회담과 두차례의 실무회담이 개최되었다. 지난 6월 열린 제3차 회담에서 북한은 미국이 CVID 요구를 철회하는 것을 전제로 핵무기 관련 모든 시설과 그 운영으로 나온 결과물들을 동결하고, 핵무기를 더 만들지도 이전하지도 시험하지도 않으며, 동결은 종국적인 핵무기계획 폐기로 가는 첫 시작이라는 내용을 담은 협상안을 제시하였다. 동시에 핵동결에는 반드시 보상이 동반되어야 하며, 동결기간은 보상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구체적 보상 내용으로는 미국이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와 봉쇄를 해제하고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며, 200만㎾의 에너지 보상에 직접 참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 외무성대변인, “제3차 6자회담 진행정형에 언급”(2004.6.28); 북한 외무성대변인, “미국의 ‘전향적 제안’은 론의할 가치도 없다”(2004.7.26) 참조.)  

  이에 대해 미국은 “폐기를 전제로 한 북핵 동결 수용”과 “단계적 대북지원” 용의를 표명한 바 있다. 일견 미국이 양보한 것으로 볼 수도 있으나, 일단 북한을 마지막 협상구도로 유인하려는 최대한의 노력을 전개하여 결렬에 대비한 명분을 축적한 후 어떤 결정적인 행동을 준비하려는 의지로도 해석된다.
(홍관희, “3차 6자회담 종결과 북한 핵문제: 실상과 전망,”「국제이슈해설」(자유기업원, 2004. 6. 28); 이러한 비관적 해석과 다르게 제3차 6자회담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분석도 많다. 곧, 제3차 6자회담에서 참가국들은 6자회담이 북핵문제의 위기 고조를 방지하고 관련국들의 입장을 조율할 수 있는 유용한 창구로서 가동될 필요성이 있다는 점에 합의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박종철, “제3차 6자회담의 평가와 전망,”『정세와 정책』96호 (세종연구소, 2004년 7월))    

  ‘공식적으로’ 미국은 단지 핵없는 북한이 아닌 정상국가로 변화된 북한과 교섭을 한다는 강경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때문에 CVID를 6자회담 타결의 궁극적인 목적으로 삼고 있으며, 이를 보증하는 북한의 先행동, 예컨대 핵폐기를 전제로 한 핵동결을 선결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부시 행정부는 북핵문제를 반테러전의 틀, 구체적으로 확산방지구상(PSI)의 틀로 다루고 있다. 북한의 협상/억제 이중 핵정책에 대해 미국도 6자회담과 확산방지구상의 이중 대응을 하고 있다.


Ⅳ. 북핵의 斷想: 북핵문제의 ‘진정한’ 해결 시나리오 전망


  제3차 6자회담에서 제기된 북한과 미국의 제안이 표면적으로는 유사한 부분이 있다. 그러나 쌍방 제안의 기본 골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양국이 새로운 정치적 결단이 없는 한 합의에 이르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은 북핵문제를 자신의 국가안보의 핵심문제로 보고 있고 또 북한 지도부를 불신하기 때문에, 폐기가 아닌 동결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 반면 북한도 핵억지력을 생존전략의 마지막 보루라고 생각하고 있고 미국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의 요구를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백보 양보해서 폐기와 동결의 갈등을 잠정적으로 타협하더라도 보상의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특히 북한은 미국이 주장하는 CVID 요구에 대해 검증가능한 주한미군의 철수와 미·북 평화협정 체결 및 관계정상화를 내용으로 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안전담보’를 요구한 상태다. 경제적 보상의 경우도 문제가 많다. 븍한과는 보상 규모와 관련하여, 그리고 나머지 국가들과는 재원 분담방식을 둘러싸고 계속 홍역을 치를 것이다.

  클린턴 행정부 당시 국무부 핵비확산담당 차관보를 지냈던 로버트 아인혼에 따르면, 미국내에서 북핵문제 해결방안을 둘러싸고 나눠져 있던 체제변화파와 대화파가 리비아 모델의 성공을 계기로 북한에도 리비아 모델을 적용해야 한다는 데 원칙적 합의를 이루었다고 전언한다. 대선 이후에도 6자회담이 가시적 성과를 보이지 못할 경우에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부, 확산안보구상의 실천, 일본의 대북 경제교류 억제를 추진하고 최종적으로 체제변화를 모색해야 한다는 적극론과, 북한의 핵물질과 시설을 보다 장기간 단계적으로 폐기하면서 이에 대응하는 경제지원을 하는 신중론 사이의 갈림길에 미국이 서게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Einhorn, Robert, 2004 “The North Korea Nuclear Issue: The Road Ahead,”(August 14), http://www.nautilus.org/fora/security/0433A_Einhorn.html.)

  결국 북핵문제의 ‘진정한’ 해결의 핵심은 ‘보상’에 관한 것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그러나 보상은 어느 한편의 일방적 수혜로 가능한 것은 아니다. ‘주고 받기’(give and take)에 따른다. 북한에게 체제안전과 경제적 보상이 필요한 것 이상으로 미국 또한 북핵문제의 해결이 그들의 세계전략 수행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분석은 북핵이 미국의 ‘골치거리’이기 때문에 미국의 해결책은 북핵의 확실한 제거에 있다고 믿어(?)왔다.

  그럼 미국에게 북핵문제가 갖는 전략적 이해관계는 무엇일까? 미국의 대중전략 수행을 위한 수단이 아닐까? 21세기 국제구도는 미국의 ‘제국’화를 기본축으로 과연 어느 나라가 미국의 패권에 도전할 수 있을까에 집중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결론은 향후 20~50년 사이에 미국에게 도전할 수 있는 국가의 출현이 가능하지 않다는 데로 모아진다. 한편에서는 중국의 무서운 성장세를 볼 때 중국이 ‘잠재적’ 도전국이 될 것이라는 ‘중국경계론’도 있다. 중국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0년 상하이 엑스포의 성공을 통해 2020년을 목표로 한단계 더 도약하고자 하는 야심찬 계획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문제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가정도 성립된다.

  그러면 거꾸로 질문하여, 만약 미국의 공식 입장대로 CVID가 달성되어 북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경우 미국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일까? 반테러전 수행에 심각한 걸림돌이 되는 핵과 대량살상무기의 판매를 저지할 수 있다는 점, 대량살상무기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점, 북한을 굴복시켜 미국의 위신이 선다는 점 등등, 이미 공개된 많은 이익을 물론 얻을 수 있다. 그러나 완전한 제거방식으로의 해결로 인한 미국의 현실적 손해는 없을까?

  대화나 회담은 만남을 전제로 한다. 대화는 현안이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설령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만남 자체는 의미가 있다. 특히 서로 적대적인 관계에 있을 때에는 더욱 그렇다. 최소한 대화하는 동안만이라도 전쟁은 중단시킬 수 있다. 또한 대화를 통해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되고, 필요하다면 비밀스런 일을 공모(?)할 수도 있다. 6자회담이라고 하나 회담의 1차적 주체가 미국과 북한임에는 틀림없다. 비록 겉으로는 자기 입장을 고수한 채 도저히 합의에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지만, 어느 시점에 가서는 극적인 ‘결렬’의 합의 도출을 연출(?)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북핵문제는 미 대선이후 그 결과에 관계없이 6자회담의 아젠더라기 보다 ‘새로운 회담’의 아젠더가 될 수 있다.

  결국 6자회담으로 미국측의 공개된 희망인 CVID가 달성된다면, 미·북이 이 문제로 머리를 맞댈 일이 없다. 국제정치의 기본논리는 현실주의다. 새로운 현안을 만들지 않는 이상 서로 만날 일이 없다. 그냥 합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면 될 뿐이다. 그러다가 이행이 잘 안되면 그때부터 ‘새로운’ 대화를 시작하면 된다. 또 하나의 대화채널을 만드는 것이다. 제네바합의가 체결된 후 그 이행과정에서 미·북이 보여준 대화행태를 보면 알 수 있다.

  6자회담에서 미·북간 대화를 주목하는 이유는 양측이 강경으로 치닫는 데에는 말못할 사연이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미 대선이라는 공개된 정치일정이 큰 이유 중 하나일 수 있지만 이유의 전부가 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부시가 되든 케리가 되든 북핵문제의 해결원칙에는 차이가 거의 없다. 다만 협상방법상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김정일도 이 점을 잘 알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이라크전이 급해서 북핵문제를 뒤로 제쳐놓은 것일까? 이 또한 그럴 수는 있다. 그러나 뒤로 미룬 데에는 미국의 국익 우선순위상 이유가 있을 것이다.

  결국 북핵문제는 ‘핵’ 자체가 문제이긴 하지만, 그 보다는 ‘북한’이 더 큰 문제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북한이라는 독재국가가 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라는 논리도 성립되지만, 핵심은 북한이 미·중 구도속에 누구 편을 들 것인가 하는 것이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려고 하기 때문에 미·중이 북한에 개입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된다. 미국은 북핵문제를 중국에게 풀라고 하면서 공세적 입장을 취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은 자신의 영향권에 있는 북한 때문에 자신이 공격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므로 수세적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북한으로서도 미·중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잘하면 체제보장과 경제적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여기서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즉, 북한과 중국은 혈맹관계이기 때문에 북한이 중국을 버리고 미국을 결코 선택할 수 없다는 선입견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원교근공’은 외교의 기본 전략이다. 남북한과 미·중 사이에 이 원리를 적용한다면 남북한은 모두 ‘친미반중’의 입장이어야 한다. 그런데 최근의 정세를 보면 남한은 ‘반미친중’으로 가고 있다. 이것은 원교근공의 원리에 거꾸로 가는 것이다. 물론 원교근공이 꼭 지켜야 하는 법칙이라는 말은 아니다.

  북한은 지금까지 ‘친중반미’의 입장을 지켜왔다. 최근 북한의 외교행태를 볼 때, 북한이 친중을 택한 것은 반드시 중국에 대한 우호성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모습이 보인다. 북한이 중국으로부터 엄청난 지원을 받고 있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이 꼭 친중을 해야 하는 이유라고 보는 것은 국제정치의 현실을 너무 안이하게 바라보는 것이다. 오히려 북한의 친중은 미국의 대북 적대성에 대한 반작용 내지 자기 보호본능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그럴 수 있다면, 북핵문제는 우리의 선입견에 바탕을 둔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방식으로 결말이 날 수도 있다. 총은 총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총구의 방향이 문제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북한의 핵이 어느 쪽으로 향하느냐가 핵심이다. 그렇다고 북한 핵무기가 베이징을 겨냥하여 위협한다는 경우를 상정한 것은 아니다. 조건만 맞다면 북한 또한 미국의 대중전략 수행을 위해 자기 역할을 충실히 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럴 경우 한반도를 중심으로 ⑴ ‘미+북 對 중국’ ⑵ ‘미+남북한 對 중국’ ⑶ ‘미+북 對 중+남’의 세가지 구도를 상상할 수 있다.

  지금까지 각국 안보전문가들의 6자회담 전망은 6자회담의 전도가 불투명하고 그에 따라 북한이 미국과 국제사회로부터 심각한 어려움에 봉착할 것이며, 설령 북한이 6자회담에서 대가를 얻는다 해도 이는 미봉에 그칠 것이라는 전망이 절대적으로 우세하다. 그러나 상기의 세가지 구도 중 어떤 것이 만들어지더라도 북한은 우리가 거의 예상하지 못했던 선택을 할 수 있게 된다. 체제는 탄탄하게 보장되고 경제적 재건도 가능해진다. 김정일이 전면적인 개혁·개방을 전격적으로 수용하는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북한의 경제재건모델로 자주 거론되는 ‘박정희 모델’이 성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구도는 어느 것일까? 물론 북한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체제전환하는 것이며, 이를 국제사회가 적극 돕는 경우다. 문제는 이런 상황을 가능케 하는 환경을 만드는 일이다. 이것이 더 힘들다. 우리에게 유리한 구도가 어떤 것일까에 답하기 앞서 먼저 대외환경을 조성할 능력이 있을까를 고민해야 한다. 핵심은 우리와 미국과의 관계 설정에 있다. 참여정부 출범이후 지금까지 한미관계는 심한 갈등상태에 놓여 있다. 결코 순탄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제대로 관리하지 않고서 유리한 구도를 기대할 수 없다. 오히려 가장 불리한 구도가 무엇일까 하는 것을 찾아서 그것부터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다.

  가장 불리한 구도는 말할 것도 없이 미·북이 대결로 치달아 한반도에 전쟁위기가 고조되고 급기야 한반도에 전쟁이 발발하는 것이다. 한반도와 한민족 전체의 공멸로 가는 시나리오다. 즉, ⑷ ‘미국 對 북한’ ⑸ ‘미국 對 남북한(민족공조)’ ⑹ ‘미국 對 남북한+중’, 이 세가지는 공통적으로 전쟁으로 결말날 수 있는 구도다. 결국 유·불리 문제의 열쇠는 동맹과 공조의 대상을 미국으로 삼을 것이냐 중국으로 삼을 것이냐에 있다. 미국을 고립시키는 구도는 위험하다. 전쟁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을 고립시킬 경우 북한에게 재건의 기회가 만들어진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이처럼 미·중을 축으로 상반된 상황 전개가 가능한 까닭은 미국의 ‘제국’적 위상에 대해 중국이 넘보기 어려울 정도로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다.    

  결국 ⑷,⑸,⑹은 모두 채택해서는 안되는 구도다. 굳이 위험한 구도순으로 나열하면 ⑹―⑸―⑷의 순이다. 참여정부 들어 반미에 대한 반작용으로 ⑸와 ⑹의 구도에 대한 환상을 갖는 분위기가 우리 정치권을 비롯하여 우리 사회에서 확산된 측면이 있다. 대단히 바람직하지 않고 위험하다. 최근들어 중국의 역사도발(동북공정)로 말미암아 우리 사회내 중국에 대한 환상이 깨지고 있는 점은 참으로 다행이다.

  결론을 내리자면, 우리에게 유리한 구도는 ⑵―⑴―⑶의 순이다. 이 중에서 ⑶의 구도는 ⑷~⑹ 못지않게 위험하다. 여기서 중요하게 고려할 점은 언제든 국가목표와 관련지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유민주주의에 기초한 평화통일을 지향한다. 그런데 한반도가 통일이 되면 우리가 점유권을 갖는 것이 당연하다고 우리는 생각한다. 안타깝게도 국제정치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몫을 차지하려면 반드시 그에 걸맞는 역할과 기여가 있어야 한다. 통일한반도에 우리의 통치권을 인정받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 남한이 자기몫을 당당히 요구하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⑵의 구도밖에 없다. ⑴과 ⑶의 경우는 북한이 남한의 도움없이도 미국과 일본의 도움으로 충분히 재건의 길로 갈 수 있다. 그럴 경우 통일이 현실화되기까지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북한의 체제전환을 통해 남북이 자유롭게 교류하고 왕래하는 ‘실질적인’ 통일상태에 만족해야 할 것이다. 물론 ⑵의 경우도 ⑴,⑶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진정 통일을 바란다면 통일과정을 감당할 수 있는 경제적·외교적·사회적 역량부터 우선 갖춰야 한다.


Ⅴ. 끝맺는 말


  상기의 6가지 구도 중 어느 것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예단하기 어렵다. 어느 것도 현실화 안될 수 있다. 된다 하더라도 언제될지 예상하기도 어렵다. 언제 어떤 구도가 현실화 될지 예측하는 것은 오히려 중요하지 않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가 바라는 미래가 무엇인지에 대한 비전부터 세우는 것이다. 그런 다음 비전이 실현되기 위한 전략과 정책을 구상하고 만들고 또 프로그램을 가동할 조직과 액터를 양성하는 것이다. 미래는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다.

  미 대선이 끝남에 따라 북핵문제도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4월 용천사태 이후 북한내부의 동향을 분석해 볼 때, 김정일은 미국과의 빅딜을 준비하고 있는 것 같다. 미국 또한 대중전략의 실행을 위해 북한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최근의 유가상승, 중국의 재고 곡물의 소진과 곡물가 상승 조짐, 중국의 환율절상, 북한 인권법 통과 등등, 모두가 중국을 겨냥하는 모습이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당시 소련이 붕괴될 때의 모습들이 오버랩된다. 김정일은 미국의 타깃이 북한이 아니라 중국임을 알고 있는 것 같다. 그럴 경우 김정일은 의외의 선택을 할 수도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 3여년의 기간은 동북아 판도가 격렬하게 요동칠 가능성이 대단히 높은 시기로 판단된다. 이 시기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04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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