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차 집담회]이라크전과 한반도

by KG posted Dec 13, 2004

일시 : 2003년 4월 4일

주제 : (1)이라크전의 성격과 전망, (2)이라크전과 한반도문제,
         (3)파병논란과 참여정부의 리더쉽, (4)종합토론

사회 : 조 민(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발표 : 민병석(강원대 초빙교수, 전 체코대사)
         최배근(건국대 경제학부 교수, 하남민주연대 대표)
         윤여진(목요대화모임 대표)
         김석규(일굼 총무)

토론 : 진월 선사 (URI Korea 대표) 外 18인 참가


1주제: 이라크전의 성격과 전망


민병석 - 이라크전의 현실적인 이유는 네 가지다. 테러로부터 미국안전의 보호. 이스라엘의 항구적인 안전보장. 팍스 아메리카나 하의 세계석유질서 확립. 그리고 미국의 내년 대선의 재선.

- 유엔에 큰 기대를 하지만 원래 유엔은 고상한 이념표방과 달리 강대국의 대외행위에 대한 명분제공을 위한 기구로 만들어졌다. 이번 유엔 안보리의 미국 의사 거부에 대해 워싱턴이 결코 충격을 받지 않는다. 미국의 정책을 유엔이 지지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임무를 게을리 한 것이며 유엔의 존재가치를 상실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부시는 원래 Born-again Christian이다. ‘악의 축’은 종교적인 용어다. 나쁜 사람은 용서할 수 있지만 악마는 용서할 수 없다. 원리주의적 자세는 무슬림도 마찬가지다. 근본주의적 종교자세가 정치에 개입되는 것은 타협과 공생을 전제로 하는 정치에서는 문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금세기 내 미국 몰락을 점치는 건 지나친 기대

- 20세기 들어와서 미국이 실패한 전쟁은 있지만 패망한 전쟁은 없다. 과도한 국제사회에의 개입으로 미국의 국력이 점차 소진되고 미국의 국제적 위치와 지도력이 약화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지만, 미국의 인적 물적 사회적 잠재력으로 미루어 보아 21세기 내에 미국이 비주류로 몰락할 가능성을 우리의 생애에 기대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기대다. 우리 입장에서는 어떻게 미국을 유용하게 활용하느냐가 현실적인 문제다.

- 미국이 조기 승리하고 프랑스 독일 등 유럽국들에게도 적당한 이권참여의 기회가 제공되어 기독교권 내에서의 심한 갈등이 수습된다면, 기독교권 전체에 대한 아랍권의 전반적 불신은 크게 증폭될 수 있다. 문화권 간의 대립이 되고, 상대적으로 열등한 아랍권의 경우 테러로 많이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본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아랍권이 민주화되면 될수록 그 경향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날 것이다.

- 전비분담에 관해 미국은 이라크 재건과 관련한 사업에의 참여를 미끼로 제의해 올 수 있다. 한국의 경우 직접적 전비분담보다는 간접적 전비 분담, 예를 들면 무기를 포함한 미국상품의 구매 등으로 대처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보며 이때에는 반드시 한국상품의 대미수출제한 조치와 연계할 것을 정부에 권하고 싶다. 이것 저것 따로 하는 건 현명한 외교가 아니다. 아울러 인도적 차원의 대이라크 지원을 우리 능력 범위 내에서 충실히 하는 것이 신 이라크 정부, 나아가서는 대 아랍권과의 관계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이다.

최배근 - 9.11 테러는 미국의 입장에서 대단한 충격이다. 국제테러위협의 완전제거, 즉 알카에다와 같은 조직이 배양될 수 있는 토양을 제거하고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국가에 미국식 민주정부 수립을 위한 접근이 미국의 이념적 동기라고 본다.

이라크전은 이슬람에 미국식 제도와 질서를 확산시키는 서곡

- 미국 경제가 매우 좋지 않다. 미국 경제력의 근간은 금융을 중심으로 하는 서비스 산업과 이를 효과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한 정치, 군사력이다. 70년대부터 진행해 온 것이 월가식 시장경제를 전지구적으로 확산하며 기업모델을 이전시키는 것이다. 미국의 보수주의면에서 미국과 다른 시장경제를 가진 제도에 대해 변혁을 강제하는 혐의가 있다. IMF를 통해 한국식 기업모델을 해체시켰던 것처럼, 이라크전은 이슬람진영에 미국식 제도와 질서를 확산시키는 서곡이 될 수 있다.

- 석유이권과 관련해 미국의 이익은 직접적인 것과 간접적인 것이 있는데 잠재적인 경쟁국가들에 대한 것이라면 간접적인 이익이다. 견제대상인 중국과 러시아, 유럽에 대해 미국이 끊임없이 자신과 경쟁상대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중동지역 석유에 대한 통제는 매우 중요하다. 이라크는 이들과 너무 깊숙이 연결되어 있다.

- 이라크전에서 미국이 보이지 않게 지불한 가장 큰 비용은 국제사회에서의 ‘신뢰’의 손상이다. 미국의 금융모델이건 기업모델이건 미국사회의 기본이 되는 것은 ‘신뢰’이다. 그리고 탈냉전 이후 ‘다원화’라는 국제사회의 추세를 역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앞으로 미국이 치러야 할 비용이 만만치 않을 수도 있다.

김석규 - WASP의 입장에서 이라크전은 확실히 명분 있는 전쟁으로서 패권전쟁의 측면이 강하다. UN은 물론 ‘늙은유럽’이라 지칭한 NATO 권역 내에서의 이탈 움직임을 좌시할 수 없다. 그리고 중동의 우방국들은 원리주의 바람에서 무기력하며 OPEC의 통제 또한 안심할 수 없기에 ‘민주주의의 수출’이란 명분 하에 중동판 저강도 전쟁이 이어질 수 있다.

- 이라크 내의 복잡한 정치환경으로 인해 군정에 이은 과도정부 안착도 쉽지 않다. 이 경우 아랍민족주의의 선동에 의한 게릴라전이 이어져 중동 전체가 극히 불안정해질 수 있고 이스라엘로 이어지는 도화선도 여전히 살아있다. 이라크전의 여진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2주제: 이라크전과 한반도문제>


민병석 -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이라크 다음에 한반도냐. 미국의 반테러 전쟁의 확전이란 측면에서 이라크식 해결방법이 유효하다 판단하면, 특히 북한이 이라크와 같이 비타협적이고 대결적인 자세로 계속 나온다면 북한에 대해서도 유사한 방법을 쓰고 싶은 유혹을 받지 않겠느냐 이 점을 우려한다. 우리 입장에서는 이라크전의 종결 선언 이전에 어떤 형태로든 북핵 문제의 해결책이 나오도록 하는 게 급선무다.

한국과 중국이 미국의 압력을 끝까지 버텨낼 수 있을지...
시간 많지 않아


- 평양에 대한 워싱턴의 반응은 의도적인 무시 전략이었으나 이제 이라크전 종결로 북핵문제가 당면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해당사국들이 무력해결을 원한다면 미국은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만약 한국과 중국이 강력히 반대한다면 미국은 상당히 부담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의심스러운 것은 두 나라가 과연 미국의 압력을 끝까지 버틸 수 있느냐. 특히 중국은 2008년 올림픽이 있는데 계속 북핵문제가 거론되고 있으면 곤란하며, 최소한 그 몇 년 전까지는 해결해야 하는데 그리 보면 시간은 많지 않다. 이럴 때 미국이 조기 해결해주겠다 나서면 유혹에 흔들릴 가능성도 있다. 둘째 중국은 기본적으로 북핵을 바라지 않는다. 형식적으론 대미용이지만 현실적으론 대한용 대일용 대중용이기 때문이다. 셋째 북한이 핵무장하면 주변국의 핵무장 도미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데 특히 대만 핵무장은 중국에게 엄청난 부담이 된다. 결국 미국이 중국 체통을 깎지 않는 방안이 마련되다면, 중국도 끝까지 군사행동을 반대하지는 않을 수도 있다.

주변 4국과 한국 등이 먼저 다자틀을 구성해
북한을 초청하는 방법도 가능할 것


- 한국정부가 제안한 로드맵에 대한 워싱턴의 반응은 ‘interesting'이다. 아직 큰 뉴스가 나오지 않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 전쟁방지와 평화라는 목적에 맞다면, 다자든 양자든 가리지 않는 냉철한 접근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제안을 한다면, 기존 4국(미 중 일 러)과 한국 등 다섯 나라가 모여 다자의 틀을 갖추며 여기서 다섯 나라 공동명의로 북한을 초청하면 어떻겠느냐. 물론 북한이 거절할 가능성도 많지만 수락할 가능성도 있다. 여기서 다자회담 틀 속에서 꼭 북한과 미국이 풀어야 할 문제가 있다면 양자회담도 병행할 수 있다는 말이다.

최배근 - 미국이 북한을 공격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무언가, 핵 확산 방지만이라면 너무나 단순하다. 레드라인을 후퇴해서 핵 개발은 용인하되 핵 수출만 하지 않으면 용납한다는 언급도 있는데, 한반도의 긴장조성이 현재 시점에서 미국의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고 본다. 이는 북한이 대내외적으로 변화한다면 동북아 경제블럭을 형성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경제에서 유일하게 성장하는 곳이 중국을 비롯한 동북아 지역이며, 북한의 변화는 새로운 경제적 모멘텀이 된다. 미국이 동북아가 자신의 이해를 관철하고 통제할 수 없는 블록이 된다면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며, 그런 측면에서 북핵사태가 그 처지를 타개하는 지렛대가 될 수 있다.

북한의 변화는 동북아경제블럭 형성의 모멘텀.
북핵사태는 미국의 이니셔티브를 위한 지렛대


- 미국의 무시전략은 주변 국가들에게 숙제를 준 것과도 같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외교가 굉장히 정교하지 못하다. 윤영관 장관이 다자주의하고 북핵의 평화적 해결 하고 맞바꿔 왔는데 너무도 성급하게 미국의 손을 들어줬다. 고작 평화적 해결 그 얘기 듣고자 나중에 쓸 카드를 다 써버리는데 외교 실리 측면에서 매우 답답한 일이다. 게다가 북한은 우리를 외면하고 있다. 나중에 북한을 달래면 된다 그리 말로 풀어 쉽게 될 문제가 아니다.

- 노무현 정부가 지난 3개월 동안에 파병 문제라든가 여러 사안에서 사회적 공감대를 만드는 여론형성과정을 제대로 밟지 않고 어느 날 갑자기 ‘국익을 고려해야 한다’ 이렇게 나오면 곤란하다. 북핵문제도 단선적으로 불쑥 ‘이라크전 끝나면 다음에는 한반도 전쟁 난다’ 이렇게 이야길 하니 과연 얼마나 설득력을 가진 논리인가. 미국 입장에서는 전쟁 치르지 않고도 한반도 위기감 조성이라든지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을 다 얻게 된다. 이 모든 것이 우리사회의 엘리트층이나 여론주도층의 부족한 경륜과 정제되지 못한 지혜가 드러난 게 아닌가. 앞으로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윤여진 - 북한과 미국에 대한 우리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절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은 다소 위험하다. 현재 북한은 체제보장의 방편으로 핵보유를 꾀하고 있고, 이러한 핵 돌파구 전략은 공갈이나 거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김정일 체제는 결코 식량과 핵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설령 수백만의 백성이 굶주린다 하더라도 체제생존의 문제를 더 중요하다. 게다가 평양의 위험감행능력은 계속 증대되고 있어 무력도 사용할 태세다. 만일 미국의 선제공격이 임박했다고 판단한다면 선제적 자위조치를 취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주변의 여론이다.


김정일 체제, 식량과 핵을 바꿀 생각이 없어
핵보유 선언 이전에 남북대화를 서둘러야


- 한반도에서 핵무기 없는 평화를 보장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미국이 협상에 별 의사가 없고 북한 또한 핵 보유 노력을 계속 하는 시점에, 남북관계를 푸는 리더쉽이 절실하며 이는 북한의 핵보유국 선언 이전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므로 남북대화가 대단히 시급한 시점이다. 만일 북한이 핵 보유국이 된다면 한반도에서의 화해과정은 대단히 어렵게 되고 미국의 무력대응으로 이어질 수 있다. 94년 전쟁위기를 돌이켜보면, 전쟁은 치밀한 계산만 아니라 우발적 계기와 변수로도 인화될 수가 있다.

김석규 - 북핵 전쟁은 어렵다고 본다. 이라크와 달리 특별히 먹을 만한 희소자원이나 전략자원이 없다. 그리고 외과수술 격의 제한폭격도 곤란하다. 이미 평양의 대포동 사정권 안에 중국의 경제중심지와 일본이 다 들어와 있다. 이라크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극단적인 모험이다.

- 워싱턴이 매력을 느낄 만한 요소는 TMD와 패권의 두 가지다. TMD는 고이즈미가 동의했고, 이제 서울만 설득하면 된다. 북핵전쟁이 나면 TMD 장사는 끝이다. 패권은 동북아 경제블럭에 관한 문제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가 동북아중심국가란 표현을 자제해 주길 바란다. 주변국가들의 은근한 눈초리는 물론 미국 입장에서 유라시아란 지구상의 가장 큰 땅덩어리를 경영해야 하는데, 만약 TSR 식으로 가스연결하고 광통신 깔고 유라시아 중심으로 세계 판을 짜겠다면 미국은 말 그대로 Continental Island 대륙 섬으로 남으란 얘기다. 이건 대단히 위험한 이야기다. 당연히 미국은 동북아 역내 긴장의 일상화란 극적인 지렛대로 그 나름의 유라시아 경영이란 전략적 이해관계를 놓치지 않으며 향후의 이니셔티브를 유지하고자 할 것이다.

- 북한 문제는 일반의 상식과는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북한은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라크와는 달리 늘 조용했고 오로지 한국하고만 시끄러웠다. 그런데도 북한은 늘 반미 반전집회 하고 호들갑을 떨며 체제를 단속해왔다. 그러다가 94년 김일성의 급서를 전후해 큰 사건이 잇따른다. 외과 수술의 위험한 국면도 연출되고 제네바 합의도 이루어지는데, 그 이면에 우리가 알지 못하는 평양 내부의 급변 가능성에 대한 고급정보랄까 워싱턴의 판단이 있을 수 있다. 긴장하고 예의주시할 대목이다.

북핵사태 지연되면 한국경제 위기 올 것

- 이전에 通美封南이라 했고 김대중정부 때는 通美通南이란 말도 있었는데 지금 보면 通美用南이다 싶다. 그리고 김영삼 정부 때 불필요하게 자존심 내세우며 미국과 각을 세우고 그 결과 한국정부는 사태의 진전에서 배제된 국외자가 되고 막상 KEDO 비용은 우리가 다 지불하지 않았나.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 벌어질 사태의 추이에 관해 우리가 보다 더 예민하게 판단하고 반응할 필요가 있다.

- 늘 경제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설사 전쟁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지금처럼 내내 북핵 문제로 홍역을 앓으면 그 자체로 한국경제는 결딴난다. 당장 지난 무디스사의 등급 인하로 10억 불이 날아갔는데 이는 3백억 불 이상을 수출해야 벌 돈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으로 진입하고 있지 않은가. 이와 관련, 대통령이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다” 이야길 자꾸 하는 건 곤란하다. 국가의 지도자가 NGO의 대표 같은 발언을 연발하며 결국 시장을 흔드는 역할을 해서는 아니 된다. 물론 아직도 일각에서 흘러나오는 “북미 직접협상 해라”의 뉘앙스 또한 투자자를 절망하게 만들 수 있다.

안보 없는 평화, 대한민국 존립 전제 않은 민족이야기 있을 수 없어

- 한국정부는 평양에 엄중히 경고할 필요가 있다. 북한이 핵을 가진다면 세상에서 가장 골치 아파지는 게 우리이며, 그 경우 저강도분쟁이 다시금 냉전시기처럼 일상화될 것이다. 핵사용의 우려로 강공은커녕 거꾸로 지원 협박에 시달리고 극단적인 국론분열에 처하는 진퇴양난의 상황이 예상된다. 그러므로 대북제재를 하는 한이 있더라도 북핵 문제를 조속히 명백하게 매듭짓기 위해 한국정부가 나서서 공격적인 주도(initiave offensive)를 해야 한다. 아직도 중재 식의 나이브한 사고방식에 젖어 워싱턴에도 좋은 소리 듣고 평양에도 좋은 소릴 듣는 그런 해법을 찾는다면 그건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이라크전 지지로 워싱턴이 우릴 보고 웃어주고 베이징도 압력을 강하게 넣는 지금 이 시점이 마지막 기회이자 위기의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가야 한다. 나아가 [한반도문제]에 관한 한국정부의 입지와 발언권을 만들 전략적인 판단도 해야 한다. 이 상태로 가서 평양이 레드라인 넘으면 한국정부의 입지는 사라진다. 분명히 말하지만, 평화를 이야기하는데 안보 없는 평화란 있을 수 없다. 민족을 이야기하는데 대한민국의 존립을 전제로 하지 않은 민족의 거론 또한 세상 어디에도 있을 수 없다.


<3주제: 파병논란과 참여정부의 리더쉽>


민병석 - 파병논란과 관련해 인조 때를 되돌이켜보자. 주화파가 없었다면 백성의 참상이 더욱 심했을 것이며 주전파가 없었다면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니었을 게다. 지금 이 두 가지를 다 얻어야 한다. 약소국에서 명분이냐 실리냐 판단을 해야 하는 상황은 자주 온다. 그런데 이걸 윤리적인 문제로 몰아 비난한다면, 이는 외교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하려 한다는 의심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 반전평화는 건전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를 국가정책입안자들이 최고의 정책판단 기준으로 삼는다면 국제적으로 아주 저급하고 우민에 의해서 통치되는, 감정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로 인지될 가능성이 높다.

- 반전 말고 비핵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다. 이는 한국사회의 민족주의의 과잉에 기인하며 젊은이들은 더 하다. 형평의 문제를 떠나 현실로 봐도 곤란하다. 한국의 무역액수가 국가예산보다 3배를 넘는데 이런 나라가 흔치 않다. 그런데 외국을 무시하고 기분내키는 대로 공격하는 건 곤란하다. 기분은 좋고 시원하지만 책임 있는 사람이 마이크대고 그러는 건 문제가 있다.

진보를 동원해서 북한을 설득하고
보수를 동원해서 미국을 설득하자


- 갈등은 어디에나 다 있다. 갈등을 대결 자세로만 보지 말고 보완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다. 진보세력, 보수세력이 싸우기만 한다, 흔히 진보 때문에 미국과 관계가 틀어지고 보수 때문에 북한과 관계가 틀어지고 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진보를 동원해서 북한을 설득하고 보수를 동원해서 미국을 설득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자. 다 배경에는 나라사랑의 입장이 있는데 그 방법의 차이일 뿐이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으로 조화시켜 나가자.

최배근 - 파병논란을 명분과 실리, 이렇게 대비하는 건 어폐가 있다. 서로 양 측면이 다 있다. 다원화 과정에서 탈구분화 현상이 나타난다. 국론분열이란 게 80년대 진보보수의 구분과는 다르지 않나. 대통령이 파병을 결정하고 지지층은 파병을 반대하는 현상이나 여야정당의 구분이 없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만약에 의료병만 보낸다고 했으면 훨씬더 많은 이가 찬성했을 수도 있다. 그리 보면 분열이라 표현했지만 굉장히 다양한 욕구와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판단이다. 문제는 다양하고 상이한 목소리를 모으는 훈련이 부족하다. 지금까지 이분법과 피아 구분에 익숙한데 앞으로 이렇게 분출하는 다양한 목소리를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의 과제이자 과거의 대립과는 다른 긍정적인 상황이다.

파병논란은 다원화 과정의 탈구분화 현상.
다양한 목소리 모으는 훈련 과제로 남아


- 다양한 목소리가 자리잡으려면 서로 정교하고 지혜로와질 필요가 있다. 비핵 거론하면 한미동맹주의자라 인식하거나 파병하면 한미동맹의 이념에서 당연하다는 교조적 반응의 경우엔 논리의 부족을 극복해야 하며, 나아가 그 과정에서 정부와 NGO의 역할 정립도 고려해야 한다. 북핵 해결과정에서 정부가 내지 못하는 목소리를 누군가 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파병논란의 와중에 정부가 그런 고려와 배려가 있었는가 보면 대단히 아쉽다. 오히려 정부가 파병의 이유를 정교하게 풀어내고 시민사회의 에너지를 한반도 평화 구축으로 활용하기는커녕 거꾸로 파병반대 운동진영과 대등한 입장에서 문제를 풀었다는 답답함을 느낀다.

윤여진 - 파병논쟁을 우리사회의 자산으로 잘 자리매김해야 한다. 그러나 파병이 결정되었으니 평화논쟁이 끝난 게 아니다. 이제 평화를 실현하고 그 가치를 사회적으로 국가적으로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가 탐색을 시작해야 할 때가 되었다. 사실 이 자리를 준비하기 전에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더니, 소위 시민사회진영에 있는 사람들에게 파병 반대가 아닌 이야기는 조금도 접수가 되지 않았다. 한편 연배가 있으신 분들과 통화하면 한마디로 모든 게 불안하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미 결정된 파병에 그래도 반대하는 것은 또 무엇인가. 날치기 통과도 아니고 충분히 토론하고 여야에서 다 찬반표가 나왔는데도 그것을 수용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것인가.

해방 이후 반세기가 지났는데,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기 이렇게 어려운가


- 상황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해방 정국의 좌우갈등 이후 반세기가 지났는데 아직도 우리의 의식수준은 다른 생각을 받아들이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왜 내 생각을 끝까지 관철하고 주장해야 하는가. 낙선운동, 국적포기, 군대 간 사람에게 항명해라 이런 이야기가 언론에 나온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지 않은가. 그리고 한쪽에선 해병전우회가 빨간 띠 두르고 우리도 낙선운동 한다고 외치고 있다. 아무래도 한국사회에서 자유주의적 토양이 너무나 약한 게 갈등의 골만 더 깊게 패이게 한다는 판단이다. 이는 대통령 주변에서도 그리 다르지 않을까 우려가 있다. 또한 주장이 강하다 보니 막상 개혁의 흐름으로 당선되었는데 개혁의 프로그램은 취약하고 내실이 부족하다는 판단이다. 게다가 입장이 양분되어 있는 상태에서 참여정부를 표방했던 것도 어쨌든 좀 좁혀나가자는 판단일진대 막상 매번 양론에 걸려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안타까움이 든다.

- 파병반대 비상대책 국민회의에서 맥도날드 가지 말자, 코카콜라 먹지 말자 그러는데 반전운동이 반미운동으로 가는 것은 참 문제다. 더군다나 시민사회가 주도하는 건 더 문제다. 주변에서 돌 맞을 이야기지만, 이럴 때일수록 우리사회의 정서나 의식을 어떻게 고양하고 가능하면 다른 이야기도 수용할 수 있으며 합리적인 방법을 같이 모색하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다.

김석규 - 복잡한 파병논란의 이면에 두 가지 요소가 있지 않을까. 하나는 금기의 해제이고, 또 하난 이념적 지형의 문제다. 북한이란 금기를 뚫고 나온 게 2000년이고 미국의 금기를 넘어선 것이 작년이 처음이다. 그런데 이번엔 그 두 가지 금기가 한데 얽혀있다. 이젠 누구든 북한과 미국에 관한 설익은 생각을 제 맘대로 다 떠든다. 극적인 변화이며 아직도 그 자유의 향유를 넘어선 논리를 요구하기에 이른 면이 있다. 다음으로 이념적 지형에선 리버럴이 없다. 그런데 이는 시민사회란 말과 서로 형용모순이다. 아직 한국사회에선 80년대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난 시민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87년 체제랄까. 당시의 세 그룹인 보수테크노크랫과 양김세력 그리고 운동권이 아직도 한국사회의 면면을 장식하고 있다.

87년 체제 넘어서는 리더쉽 창출해야

- 사회적 발언을 하는 곳 어디든 막내는 30대고 20대는 없다. 그리고 지금 20대의 마음을 휘어잡고 있는 데는 단 한 군데도 없으며 이는 양김씨 10년 정치의 결과다. 20대는 탈근대, 중심의 해체 경향이 대단히 강하고, 자신들끼리 만나도 종잡을 수 없고, 그 칼날에 처음으로 날라간 것이 작년의 우파다. 노무현 정부와 운동권이 다음 타겟이 될 수도 있다. 이는 곧 리더쉽의 총체적 부재를 웅변한다. 상징적인 사건이 얼마 전 임시국회의 대통령 시정연설이다. 국회의원 중 아무도 기립은커녕 박수도 친 사람도 없다. 대한민국에 대통령은 없다.

- 한국의 반전평화운동은 대단히 독특하며 본질상 반미다. NGO들은 얼굴이며 실제 집회장과 인터넷을 달구는 주역은 지난 15년 내내 반미통일운동의 외길을 달려온 사람들이다. 게다가 방송 또한 이라크와 북한의 잔인한 독재정치는 거론되지 않고 미국의 오만한 일방주의만 도마에 올리고 있다. 또한 3~40대들은 80년대 학창시절 동안 자연스레 반미교육을 받았으며 여전히 부채의식을 가지고 살고 있다. 비핵안보라는 표현을 쓰지만 정말 각오가 필요한 표현이다. 그러나 한국의 좌우파는 무능하다. 아직도 15년 전의 교과서를 버리지 못하고 있으며 촛불시위와 북핵사태를 거치며 여론은 자신들의 편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문제는 그들을 대신할 집단과 리더쉽이 아직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병자호란의 말미에 주화파 최명길이 쓴 항서를 척화파 김상현이 찢어 발기고 서로 부둥켜 안고 우는 장명이 있다. 후세에까지 심금을 울리는 투철한 국가사회에 대한 책임의식, 이제 그를 회복해야 할 시점이다.


<종합토론>


이윤주원(아침을 여는 집 소장)
- 괴롭다. 폭력을 폭력으로 제압하면서 폭력을 멈추게 하는 것이 옳은가 그리 하면 죄의 근원을 도려낼 수 있는가에 대해 성찰할 필요가 있다. 시민사회단체들 때문에 파병반대의 여론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휴머니즘과 애절함, 전쟁에 대한 막연한 공포가 우리 사회 반전여론의 에너지가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 파병논란에서 모두가 국익을 말했다. 그런데 우리 세대만 아니라 미래 세대, 10대에게 우리가 무슨 말을 할 것인가, 파병 이전에 무엇이 정의인가 한번 얘기해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평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철학적 배경은 빈곤 그 자체다. 평화운동을 하려면 분노를 여의어야 한다. 미국을 미워하며 어떻게 평화를 말하는가. 그것은 평화가 아니라 정치적 레토릭이자 수사이며 좌파적 이념을 가지고 정치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모임에서 평화를 얘기하려면 평화의 근간이 되는 분노와 욕망을 어떻게 여읠 것인가에 대해 깊이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강일(서울시 의원)
- 세상에 명분 있는 전쟁이 어디에 있나. 전쟁은 실리이고 명분은 단지 포장일 뿐이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다양성이 인정되고 그래야 민주주의인데, 지금 사회적 경향이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는데 너무 배타적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질타와 국력을 소진하면서 파병을 결정했는데, 아무 것도 실리를 챙기지 못하면 큰 일 난다.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파병하고 전후 복구사업에서 18개국 중 유일하게 우리 나라만 도태되었다.

- 아랍국가들은 절대 후세인 편을 들지 않는다. 그는 남의 나라가 아니라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제 나라 국민 몇십, 몇백만을 죽인 사람이다. 이라크인의 광적인 후세인 지지는 공포정치의 산물이다. 그래서 이라크전은 후세인이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으며, 이번 전쟁을 해방전쟁으로 볼 수 있는 시각이 분명히 있다. 미국의 시민들은 양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며, 미국 자체가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고 미국의 국익을 전략적으로 최우선시하는 지도부가 일으키는 전쟁이다. 미국에게 있어서 평화라는 개념은 누구하고의 평화냐에 따라 너무나도 다르다.

- 이라크 다음에 북한이라는 말에 대단히 회의적이다. 미국은 북한에 대해서 잘 모른다. 이라크와 달리 북한은 너무나 폐쇄된 사회이다. 인공위성으로 다 찍었다고 하지만 북한은 지하로 모든 것이 요새화되어 있다. 게다가 미국이 두려워 하는 게릴라전에서 북한의 세계 수위의 국가이다. 또한 실질적으로 북한에 대한 공격은 단기전이 절대 불가하다. 미국은 여론을 등에 업지 않고는 절대 장기전을 치룰 수 없으며, 북한하고 싸워서 이긴다 하더라도 이익이 거의 없기 때문에 북한에 대한 미국의 공격은 어렵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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