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누구십니까? -이역만리에 잠든 무명용사에게-

by 이은영 posted Jul 05, 2012
당신은 누구십니까?
- 이역 만리에 잠든 무명 용사에게 -


                                                         이은영(KIN 지구촌동포연대 활동가)


나라를 빼앗기고 땅을 빼앗긴 당신은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먹고 살기 위해 이 땅을 떠나야만 하셨지요. 두 손에 무기를 들었던 당신, 땅을 일구었던 당신. 일본군이 피를 흘리면 조선인은 그 보다 몇 배의 피를 흘려야했음에도 당신들이 지키고자 했던 것, 이루고자 간절히 소망했던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대한민국의 국적을 보유하였던 자 또는 그 직계비속으로서 외국국적을 취득한 자 중 대통령령이 정한 자(이하 “외국국적동포”라 한다)”
- <재외동포의출입국과법적지위에관한법률> 제2조 제2항(1999).


당신이 그렇게 소망했던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된 조국은 당신들을 ‘외국국적동포’에도 포함을 시키지 않았습니다. 법이 그랬습니다. 대한민국정부수립 훨씬 이전에 이 땅을 떠난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져볼 기회도 없이 조국에서 배제되었습니다.

이런 조국에 조금 더 나은 삶을 위해 당신의 후손들이 찾아왔습니다. 엄청난 빚을 지고, 가산을 정리하다시피 온 중국동포들은 당연히 ‘외국인’ 으로 분류됐고, 안정된 체류자격을 부여받지 못한 동포들은 결국 불법체류자가 돼 오지도 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습니다. 신분이 그렇다보니 부당한 일을 당해도 목소리 하나 낼 수가 없었지요.

그때 중국동포들이 이렇게 소리쳤습니다.
“미국 동포만 동포고, 잘 사는 나라 동포만 동포냐! 우리도 ‘동포’다!”


[재외동포법 개정 촉구(1999)] ⒸKIN(지구촌동포연대)

중국동포 수 백 명은 끈질긴 농성 끝에 2004년에 드디어 ‘외국국적동포’로 ‘인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5년 전, 5년간 체류하면서 일을 할 수 있는 ‘방문취업비자’라는 새로운 비자 형태를 도입하면서 정책적인 부분에서 많이 개선돼 이전과 같은 불법체류자로서의 설움을 받지는 않아도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되기까지 20여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모진 시간을 견뎌내야만 했었지요.

지금은요? 정책적인 면에서는 많이 개선은 됐지만, 여전히 국내 노동시장을 교란시키고, 언제 범죄를 일으킬지 모르는 잠정적인 범죄자로 생각하는 인식은 쉬이 바뀌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전히 다른 지역의 동포들과의 형평성 문제를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구요.

그런데 올해(2012년)부터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정부의 말만 믿고 중국에 다시 들어갔다가 처음으로 떳떳한 신분으로 한국에 들어오려는 사람들을 과거 법위반 사실을 이유로 입국심사장에서 쫓아내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법을 어겼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동포’를 ‘동포’로서가 아닌 국내 노동시장을 교란시키고, 언제 범죄를 일으킬지 모르는 잠정적인 범죄자로 생각했던 우리의, 그들의 조국이 그들을 진짜 ‘범죄자’로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나라를 빼앗겨 목숨과도 같은 땅을 빼앗긴 당신은 살아남기 위해 그 목숨을 버리고 고향땅을 떠나 새로이 땅을 일구었습니다.

나라를 빼앗겨 목숨과도 같은 땅을 빼앗긴 당신은 나라를 되찾기 위해 이름 한자 남기지 않고 목숨 바쳐 싸웠습니다. 그런 당신께 우리는 이렇게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중국에 사는 200만 중국동포를 단지 중국 국적을 가진 하나의 소수민족인 ‘조선족’으로 대할지, 조선땅에 뿌리를 둔 ‘중국 동포’로 대할지, 선택은 우리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