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홍익인간을 꿈꾸는 Pan-Korea, 그리고 공존공영의 동아시아를 위하여

by 希言 posted Oct 04, 2004
Ⅰ. 홍익인간을 꿈꾸는 Pan-Korea, 그리고 공존공영의 동아시아를 위하여


1. 고난의 민족주의를 넘어 공동체의 꿈을 찾아서

한민족의 20세기는 유사 이래 미증유의 생사기로였다. 국가의 존망을 넘어서서 민족의 정체성은 물론 민족이 사라질 위기로까지 몰려야 했다. 그 후유증은 깊고 넓어, 안으로는 세기가 바뀐 오늘에도 여전히 민족통합의 과제를 이루지 못하였으며, 밖으로는 지구촌이란 표현이 무색하게도 동아시아 역내 국가와 민족에게 공공연히 역사의 정체성과 강역의 귀속성을 위협받고 있다.

그러므로 지난 세기 한민족에게 민족주의는 돌이킬 수 없는 사실(史實)이었으며, 오늘에 와서도 민족의 생존과 자결을 이루고자 하는 노심초사는 불가피한 실존이다. 아시아의 평화를 염원하는 이들은 혹시 그 노력이 Grand-Korea의 지향으로 번져 미래의 불행을 잉태하지 않을까 염려하지만, 이는 다만 기우다. 설사 대한민국이 G-8의 일원이 된다 한들 여전히 역내에서 약소국에 지나지 않으며, 사필귀정의 통일조차도 역내국들의 승인이 없이는 불가한 것이 엄연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민족주의란 용어를 더 이상 사용치 않으려 한다. 첫째, 민족주의 개념의 연원이 Nationalism에 있기에 피해-가해의 사실(史實)이 파묻히고 ‘패권주의의 역사적 경향성’으로 동일시되는 폐단이 있다. 둘째, 민족주의란 용어에는 오로지 생존과 자결의 논리만 보일 뿐 민족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꿈과 미래가 빠져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민족주의는 구라파를 제외한 인류사회의 다양하고 유구한 공동체 전반을 고찰하기에는 매우 협소한, 지난 근대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감히 민족주의 용어를 버리고, 한민족과 우리의 이웃인 동아시아 나아가 인류사회가 함께 나눌 수 있는 아름다운 꿈을 담아, ‘홍익인간을 꿈꾸는 Pan-Korea, 공존공영의 동아시아 시대’란 미래의 개념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2. 모든 민족이 공존공영 하는 미래를 위하여

인류는 다양한 종족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양성의 인위적인 해소는 가능치 않으며 지난 세기 수십 차례의 인종청소는 모두 실패했다. 그러나 공존을 거부하는 극단의 공격성은 여전히 실재하며 패권의 노골적인 추구로 귀결한다. 그리고 현실화한 패권은 언제나 자민족의 우월성을 내세우고 주변민족의 탈 개성을 강요하며, 그 결론은 주변민족의 해체와 흡수에 관한 집착이다. 역사가 보여주는 사례는 언제나 비참한 말로로 치달았음에도 오늘도 그 유혹은 계속 되고 있다.

민족은 인류사회의 진화의 결과다. 인류사회에서 혈연공동체인 족(族, Tribe)이 문화공동체(언어-문자-儀式)로서 뚜렷한 개성을 지니게 된 연후에 영속성을 확보하게 되면 민족(民族, Ethnie)이란 역사공동체로 거듭 나게 된다. 그 다음 단계의 진화는 탈 민족이 아니라 모든 민족이 공존공영 하는 ‘조화로운 인류사회’다. 우리는 마땅히 그 아름다운 세계, 다양성이 상식이 되고 활력이 되며 인류사회의 시민권으로 영속하는 미래를 만들기 위해 헌신하고자 한다.

3. 단일민족의 허구를 넘어서서

지구상에 존재하는 별처럼 많은 모든 민족은 각자 고유한 유전학적 특질과 혈연의 공통성을 확보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민족은 현생 인류(Homo sapiens sapiens)의 각 갈래로서 오로지 ‘빙산의 일각’의 차이에 따라 다양성의 원천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어떤 경우에도 이 세상에 친연성에 따른 ‘민족 군(群)’은 존재할 수 있지만 단일 민족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21세기 한국사회는 여전히 그 허구에 매달려 살고 있다.

그 이유는 자명하다. 한민족에게 지난 20세기의 민족주의는 곧 ‘생존의 논리’ 그 자체였다. 국권의 회복 차원을 넘어서서, ‘역사’에 이어 ‘말과 글’은 물론 ‘혈연’까지 파괴하려는 언어도단의 민족말살정책에 맞서면서 한민족 또한 ‘반만 년’과 ‘한글’ 그리고 ‘단일혈통’이란 무기로 생존을 위해 분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즉 ‘단일민족’의 허구는 ‘극단의 지배’가 빚은 불가피한 ‘생존의 논리’이자 임시변통의 지혜였다.

오늘의 지식에 의하면, 한민족은 유목계통의 이주민으로서 만주와 한반도 일대에 ‘정주농경사회’를 구성한 집단이자 몽골반점에서 보듯이 몽골인 만주인과의 뚜렷한 친연성을 지닌 민족이다. 다만 북방계통 유목사회와 단절하고 중국화의 길로 접어든 조선조 이래 주변 세계와 소통을 끊고 섬처럼 존재한 집단망상의 결과가 ‘小 中華’의 뒤를 이은 ‘단일민족’ 신화에 이른 것이다. 이제 그 짐을 벗을 때가 되었다. 그래야 한민족이 유목사회의 계승자로서 유라시아 대륙을 무대로 ‘조화로운 인류사회’로 나아가는 길잡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이다.

4. 홍익인간을 꿈꾸는 Pan-Korea

모든 민족에게는 그들 고유의 태생 신화가 있다. 그리고 그 곳에서 그 민족의 문화원형을 볼 수 있다. 한민족의 태생 신화는 다소 특이하다. 누구든 강조하는 우주의 기원이나 하늘자손의 유래설을 넘어서서 홍익인간을 말하고 있다. 이는 존재의 정당성이 아니라 목적의 정당성에 주안점을 둔 것으로, 정주농경사회로 접어들기 이전 경계가 없던 유목사회의 꿈을 담고 있다. 우리는 마땅히 이를 오늘의 인류사회, 자칫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의 장으로 전변할 가능성이 높은 Post-Digital 시대에 ‘공존공영의 화두’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Pan-Korea는 한민족사회의 집단의지에 달렸다. 20세기 식민주의의 피해자로서 타의에 의해 동아시아 각국은 물론 세계 도처에 이산(離散)한 한민족이 민족공동체로 거듭 나고자 함은 당연하다. 이에 관한 주변국의 예민한 반응은 역사성을 도외시한 것으로서 이를 수용하는 것은 선린우호의 증진에 별 실익이 없는 뿌리 없는 외교에 다름 아니다. 재일동포와 재중동포 그리고 고려인이 대한민국에서 차별 없이 제 능력을 십분 발휘하도록 여건에 만드는 일에 주저함이 없어야 하며, 그를 기반으로 하여 이민사회가 실질적으로 그 곳에서 뿌리를 내려 제 위상을 확보하게 모국이 도울 수 있을 때라야 Pan-Korea는 주변국과 호혜 평등한 공존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Pan-Korea를 이루어야 홍익인간을 꿈꾸겠지만, 반면 그 꿈을 전망(Vision)으로 갖지 못한 민족사회에서 Pan-Korea를 자력으로 이루는 것도 기대하기 힘들다. 결국 ‘홍익인간을 꿈꾸는 Pan-Korea’는 우리의 목표이거니와 아울러 우리 민족사회에서 새로이 형성할 인간상이기도 하다.

5. 공존공영의 동아시아 시대를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는 ‘자결’이란 천부의 권리가 있다. 공존의 파괴는, 강자가 주변의 자결권을 자의로 제약하고 그로 인해 직간접으로 생존의 위협에 처하게 함에서 연유한다. 우리는 마땅히 ‘조화로운 인류사회’의 건설을 위하여 별처럼 많은 민족의 자결에 기초한 공존공영의 질서를 추구해야 한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룰 수 있는지의 여부는 동아시아에서 갈음될 것이다. 유럽과는 달리 동아시아의 제국은 단 한 번도 역사적 화해를 이룬 적이 없을뿐더러 지금도 서로를 위험시하는 관성을 유지하고 있다. 동아시아 세계를 안중근 의사가 꿈꾸었던 ‘평화의 질서’로 바꾸지 않고서 우리가 ‘조화로운 인류사회’를 꿈꾸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에 가까울 것이다.

인류가 ‘연속된 하나의 세계’에서 마침내 이웃으로 만나게 된 ‘역사적 전환’은 지난 세기의 두 차례 세계대전이란 값비싼 교훈을 치르고야 가능했다. 그 전철을 동아시아에서 되풀이하지 않게 만드는 일, Pan-Korea가 그 조정자(Coordinator)의 몫을 해내는 시점에서 한민족의 통일과 함께 ‘공존공영의 동아시아’의 새 시대는 비로소 그 개벽을 알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