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하일통의 베이징올림픽과 궁지에 몰린 코리아 역사공동체

by 永樂 posted May 23, 2007
<월간 신동아 2007년 4월호 게재 원본>

다가오는 베이징 올림픽과 궁지에 몰린 코리아 역사공동체
"세계여, 화하일통의 중화문명을 찬양하라!"
그 깃발 아래 사라질 지 모를 반만년 역사

                                 김석규 / 코리아글로브 www.KoreaGlobe.org 운영위원



서막; 창바이여, 영원하라! 백두산은 한족의 영산

지난 창춘 동계 아시안 게임은 모든 아시아인들이 목도했듯이 중국의 메달 욕심이 얼마나 집요한지를 잘 보여주었다. 엄연히 세상이 다 아는 아시아 최강의 스포츠 강국이 점잖게 있어도 1등을 할 것인데 그럼에도 '있는 사람 더 무섭다'는 속담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독식의 식성을 버릴 줄 몰랐다. 1등이 아니라 2등과 3등을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말 그대로 압도해야 속이 풀리는 중화주의식 메달 경쟁에 기가 질릴 정도였다.

그보다 더한 압권은 아시안 게임을 스포츠 행사가 아닌 정치행사로 전락시킨 '창바이(長白, 백두산)여, 영원하라'의 대규모 선전선동이었다. 경기 기간 내내 다른 것은 떨어져도 "백두산은 중국 땅"이란 홍보책자만은 창춘 시내를 뒤덮고 있었다. 나아가 백두산에서 성화를 채화하고 개회식에서 폐회식까지 37억 아시아인에게 백두산이 유사 이래로 자신들의 영산(靈山)이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세뇌하였다.

오죽 어이 없고 기가 막혔으면 운동만 했던 어린 선수들까지 '백두산은 우리 땅'이란 즉석 퍼포먼스까지 했겠는가. 이미 중국은 동북공정으로 얼마나 많은 코리안들이 분개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도약의 기회인 베이징 올림픽을 불과 1년 7개월을 남겨놓고 그 발판이 될 아시안 게임의 마당에서 굳이 코리안의 성지인 백두산을 일부러 꼭 집어 한민족 전체를 괴롭혔다. 그들이 왜 그리 도발을 했을까.

이는 간도를 돌려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그들은 통일한국에게 간도를 돌려준다면 만주를 온전히 지배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성동격서 식으로 쟁점을 간도 반환에서 느닷없이 백두산의 영유권으로 돌리고 있다. 그래도 안심할 수 없다. 한족 엘리트들은 코리아를 반만년 유목세계의 버팀목으로 보고 있으며 그 뿌리를 뽑기 전에는 편히 발 뻗고 잘 수가 없다. 반세기 동안 만주와 몽골과 티벳을 얼마나 공들여 뿌리를 뽑고 흔적을 없애나갔는데, 그럼에도 그 남은 잔당들이 오로지 코리아의 향배만 보고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 참에 유목세계의 마지막 희망인 코리아를 한족의 문명권으로 아예 편입시키고자 한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역사를 빼앗는 것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동북공정의 결정판인 탐원공정과 요하문명 흥기론이다. 그 결론은 환부역조(換父逆祖)로서 코리아를 비롯한 북방의 제 민족들이 한족의 시조인 황제 헌원의 직계 자손이라는 것이다. 고구려 논쟁은 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그 언어도단을 진실로 둔갑시키는 마당이 곧 베이징 올림픽이며 그 시발점이 이번 창춘 동계 아시안 게임이었다.

간도 반환 문제부터 살펴보자. 일찍이 제국주의 일본은 1909년 장차 만주를 집어삼킬 욕심으로 우선 망해가는 청나라에 선뜻 남의 나라 조선의 간도를 떼어주었다. 아래 지도에 나오듯이 그냥 연변이 아니라 오늘 대한민국보다 더 큰 영토이다. 고조선은 물론 부여와 고구려 그리고 발해 대진국에 이르기까지 한민족의 고향의 동녘이었으며 1107년 윤관 장군의 동북9성의 자리이다. 또한 신라의 후손을 자처하며 금과 청을 세웠던 건주 여진의 자리이자 건주 여진 누르하치 일족과 한 핏줄이었던 함경도 백성들의 땅이다.


(사진 1) <도쿄 한국연구원 국경 자료지도 "K 1호">
[해설: 로마 교황청이 조선의 교구 관할 영역을 표시한 지도. 아래에서부터 대구교구와 경성교구 그리고 간도와 함경도를 포함하여 1920년 설립된 원산교구임. 프랑스의 <까똘리시즘 앙꼬레>(1924년)에 실린 축소복사도임.]

이렇듯 굳이 국제법을 따질 것도 없이 누가 보더라도 대한민국이 독립하는 순간 간도가 다시 우리에게 귀속됨은 불문가지임에도 분단을 핑계 삼아 중국은 남의 땅을 강탈해갔으며 김일성 정권의 연명을 도운 댓가로 백두산마저 절반을 떼어간 것이 모택동 때의 일이다. 어찌 독도와 동해의 문제를 이에 비하겠는가. 독도는 누가 보아도 울릉도 옆에 바짝 붙어있고 동해 또한 일본해라 한들 한국 쪽에서 보면 엄연히 동해인 것이다. 이렇게 일본 주장의 허점이 번연함은 물론 억지를 부려도 일본은 설득과 여론이 통하는 민주주의 국가의 일원이다. 다시 말해 얼마든지 분쟁 해결의 여지가 있는 사안이다.

그러나 간도와 백두산은 다르다. 동티모르의 억울함을 아는 사람 다 알아도 그 해결에 수많은 목숨과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듯이 국제사회는 이해관계가 우선인 냉엄한 세계다. 다시 말해 예비 초강대국인 중국과 얽혀있는 문제다. 더군다나 쇄국으로 일관했던 조선조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20세기의 대한민국은 알아도 그 이전 반만년의 코리아는 여전히 생소하다. 이는 곧 국제사회에서 얼마든지 모른 척 외면할 수 있는 훌륭한 변명거리다.

이것이 중국이 내놓고 간도를 뛰어넘어 백두산을 창바이로 제맘대로 확정하는 도발의 연유다. 어차피 제 땅을 지킬 용기와 배짱도 없는데다가 김정일 정권 문제로 옴짝달싹 말도 못하는 한국의 처지를 잘 알기에 이 참에 유사 이래 한 번도 실효성 있는 지배를 해본 적이 없는 만주와 특히 간도 지역을 완전히 중국 한족의 땅으로 둔갑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지난 반세기 동안 인구정책이란 이름의 식민정책을 줄곧 펼쳤으며 그 결과 본향의 코리안들이 소수가 되자마자 슬그머니 서간도와 북간도를 순서대로 자치주에서 자치구로 그러다가 그 알량한 자치권마저 뺏기에 이르른다. 그 공정이 완성되었음을 알리는 것이 백두산 공정이다. 어차피 안방까지 들어와 눌러앉아야 사랑채고 별채고 집어삼킨 것이 뒷전에 밀리지 않겠는가.

이 모든 일을 한민족의 통일이 되기 전에 완수해야 하겠기에 지금 중국 정부는 나름대로 대단히 분주하다. 그럼에도 이에 괘념치 않는 얼치기 국제주의자나 친중탈미의 탈을 쓴 신판 모화주의자들이 의외로 많다. 하기야 제 고향과 안방을 앗긴대도 별 불만이 없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이며, 한국 내에 그리 기막힌 흐름이 있다는 것을 베이징에서 훤히 꿰고 있기에 이렇게 대담한 도발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그렇게 간도와 백두산만 갖다 바친다고 해서 일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옛날 식으로 얘기하면 코리아가 반만년의 제 고유의 역사를 포기하고 중화연방의 반만년 제후국으로 끝내 들어가야만 이 도발은 끝이 난다.

창춘 아시안 게임에서 나타난 집요한 메달 욕심은 한중관계에서는 결국 코리아 역사공동체의 집요한 해체로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내년 여름에 우리를 매우 덥게 만들 베이징 올림픽이 생생하게 웅변해줄 것이다. 이제부터 베이징 올림픽의 화두가 될 화하일통(華夏一統)에 대해서, 동북공정과 백두산공정을 넘어서서 우리를 반만년 제후국으로 만들 요하문명에 대해 말씀드리겠다.


본론; 華夏一統, 한민족은 중화 황제의 자손

한족이 좋아하는 8자를 넣어 2008년 8월8일 저녁 8시에 베이징 올림픽은 그 막을 올린다. 우리 역시 20년 전에 도약의 발판을 만들었듯이 중국 역시 그렇게 발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입 발린 소리가 아니라 우리 옆에 있는 13억의 이웃들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고 잘 살아야만 우리 역시 이웃에 대한 막연한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 공존공영의 동아시아를 만드는 새 세기를 함께 건설할 수 있겠기에 하는 말이다. 누구 말마따나 민주주의 국가들끼리는 전쟁을 염려할 필요도 없고 사이 좋게 번영의 미래를 함께 모색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우리의 바람과 어긋나게 중국은 엄연히 반만년을 함께 해온 오랜 이웃의 역사공동체, 한민족의 뿌리를 아예 뽑으려 하고 있다. 가만히 있어도 세계의 공장이자 시장으로 자리잡아 가는 중국의 엄청난 흡인력에 빨려 들어가는 코리아를 굳이 자극해, 우리가 누구인가 정체성을 고민하게 만든 연유는 바로 한족의 뿌리깊은 컴플렉스 즉, 열등감이다. 이는 유사 이래 동아시아 대륙은커녕 중원조차 제대로 통치한 적이 한나라와 당나라 그리고 명나라 말고는 없다는 역사의 사실을 이르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저명인사들과 달리 늘 수천 년 중화의 영광만을 생각하는 그들이 근저의 열등감을 극복하는 방법으로 선택한 것은 단 하나 '유목세계의 뿌리를 뽑는 것'이다. 더 이상 지난 반만년처럼 천자의 나라인 중화세계가 천손족이라 방자하게 칭하는 오랑캐들에게 유린되는 일은 막아야 하고 이는 곧 유목세계의 흔적까지 없애야 가능한 일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래서 한족은 1949년 대륙을 석권하자마자 고매한 사회주의의 이상은 내팽개치고 가장 먼저 염불만 외우고 있던 티벳과 피부색조차 다른 위구르를 짓밟았으며 문화혁명의 와중에 몽골과 만주인들의 뿌리를 뽑았다.

그도 모자라 인구정책이란 미명으로 대거 식민 정책을 행하여 이민족들을 그 고향에서도 말 그대로 소수민족으로 만드는 과정을 착실히 밟아왔다. 그 결과 불과 수십 년만에 13억 인구 중 92%인 12억을 한족으로 만들고 나머지 55개 민족을 다 합쳐 고작 8%의 1억 인구의 들러리로 만드는 유사 이래 최악의 민족 말살이 가능했던 것이다. 어찌 보면 지난 세기에 대륙에서 중화주의는 있었지만 사회주의는 그저 허울일 뿐이었다.

그럼에도 쉽지 않은 난제가 있었다. 그는 다름 아닌 유목세계를 이루었던 여러 이민족들의 유구한 정신세계였다. 반만년 대륙을 호령했던 힛타이트와 야율야보기와 칭기스칸과 누르하치의 역사가 어디로 가겠는가. 이 대목이 이 섬찟한 이야기의 핵심이다. 말을 강가에 끌고가기란 쉬워도 물을 마시든 말든 그것은 말 마음이다. 청나라 만주인이 만들어준 사상 최대의 강역을 공짜로 물려받아, 중원과 강남 외에는 쳐다보지도 못했던 동아시아 대륙을 통째로 중국이라 분식(粉飾)하고 그 땅 위에 사는 모든 이를 졸지에 한족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그들 머리 속의 반만년 정신세계는 맘대로 조종할 수 없으니 늘 명멸을 거듭했던 역대 중원의 왕조처럼 언제 다시 오늘 최초의 중국이 순식간에 조각이 날 지 모르는 일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보면 우습지도 않은 파룬궁(法輪功)을 그리 역도 소탕하듯 견문발검(見蚊拔劍)으로 대했던 한족 엘리트 저변의 뿌리깊은 역사의식을 이해할 법도 하다. 이렇게 끝없이 분식과 식민을 거듭하며 무리에 무리를 더한 것이 오늘 허상의 중국이자 중화이다.

사실 이 대목까지라면 어느 정도 이해의 여지도 없는 것이 아니다. 연유야 어쨌든 누구든 그리 대국을 그저 얻었으면 그를 밟고 또 밟아 반석처럼 만들고 싶은 욕망이 있지 않겠는가. 그래서 이 정도에서 더 이상 무리를 하지 말고 중국이란 국가 울타리 안에 들어온 제 민족들과 공존공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어야 했다. 그리고 이는 충분히 가능하기도 했다. 누군들 13억 인구를 이 정도로 먹고 살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잖은가. 그만으로도 오늘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지금까지의 모든 잘못을 이해받을 만한 업적을 쌓은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한족 엘리트들에게 이만큼 좋은 기회가 없다. 어쨌거나 거대한 동아시아 대륙이 통째로 중국으로 되어있고 13억 중 12억이 한족이라 불리우고 있으며 그 13억 전체를 지금 잘 먹여살리고 있다. 이 정도에서 더 이상 무리를 하지 않고 55개 타 민족의 유구한 역사문화전통과 자치권을 잘 보장해준다면, 훗날 설사 국가의 모습이 어떻게 변하든 상관없이 유사 이래 최초로 온전하게 한족이 동아시아 대륙을, 제 민족의 존경을 받으며 이끌어나가는 역사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과대망상증에 걸려있다. 이는 선민사상에 빠져있는 자들의 공통점으로서 사실을 사실로 보지 않고 자신의 관념세계에서 해석한 결론만이 진실이다. 중화주의가 세상을 석권해야 역사의 정통이 서는 것이며 그를 이루지 못한다면 모든 이웃들이 즐겁게 산다 하더라도 자신들에게는 현실과의 비겁한 타협일 뿐이다. 이 불치병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코리아를 비롯한 동아시아의 모든 이웃들이 그 처방을 찾는 노력을 게을리 한 결과 오늘의 이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처방은 반드시 찾아야 한다. 한족 엘리트들에게 이웃들은 지배의 대상일 뿐이지만 우리들에게 그들은 함께 살아가야 할 영원한 이웃이기 때문이다. 그 출발점은 그들의 무모하고도 위험한 도박판을 없애는 일에서 시작한다. 55개 모든 민족의 역사문화전통을 깡그리 말살하고 그를 한족의 역사문화전통으로 편입하겠다는 도박, 세계 어디보다 다종다양한 민족문화가 뒤섞이고 꽃피웠던 동아시아의 민족 생태계를 고비사막과도 같은 불모지로 만드는 유례 없는 반달리즘(Vandalism)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중화식 반달리즘의 단계는 크게 셋으로 나눠볼 수 있다. 첫째 각개격파의 단계로서 개별 공정인 서북-서남-몽골-베트남-동북 공정, 두 번째 중화 종통의 수립 단계로서 단대공정, 셋째 중화민족 재편의 단계로서 탐원공정과 요하문명 흥기론이다. 이 세 단계는 순차이자 또한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2단계와 3단계는 항공대 우실하 교수 글에서 원용)

각개격파의 단계에서는 그들 말대로 변방을 중국이라는 다민족국가의 일원으로 확실히 그리고 강제로 편입하는 과정이며 앞서 밝힌 집요한 영토의 욕심을 채우려는 '최대영토주의'의 산물이다. 서북공정은 2002년 동북공정과 함께 시작했지만 우선순위에서 밀려 아직도 기초과제를 다루고 있다. 그 대상인 위구르는 옛날 돌궐의 땅으로서 바로 옆에 혈족인 투르키스탄이 있고 멀리 터키에까지 이르는 투르크족의 배후가 있다. 특히 위구르는 몽골의 원나라와 만주의 청나라에 지배당한 적은 있지만 한족에게는 한번도 당한 적이 없으며 게다가 외모와 종교는 물론 말과 글도 전혀 다름에도, 여하튼 한족의 역사라 주장하며 '중화민족 대가정'의 일원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서남공정은 1986년 등소평의 직접 지시로 가장 먼저 시작된다. 그 대상인 티벳 역시 위구르와 마찬가지로 유목계통의 원대와 청대에 지배당했을 뿐 오히려 한때는 한족의 자랑인 당나라 장안까지 점령한 나라다. (이 덕분에 당나라는 신라까지 삼키려다 676년 황급히 철수한다) 그럼에도 한장동원론(漢藏同源論)을 내세우며 늘 중국의 일원이었다고 강변함에야 할 말을 잃게 된다. 여하튼 연개소문만큼이나 송첸캄포을 기억하는 그들은 1949년 공산당 정부를 세우자마자 만사 제쳐놓고 적수공권이자 불자로서 평온하게 살아가던 별천지 티벳을, 한국의 운동권들이 한때 그렇게도 좋아하던 대장정 홍군을 앞세워 느닷없이 잔인하게 학살하고 유린했다. 그리고 이제는 식민정책도 모자라 그 오지에 칭짱철도(靑藏鐵道, Tibetan railway)를 놓아 세계인들이 감탄하던 청정불국을 톨이킬 수 없는 사바세계로 만들고 있다.

몽골과 베트남 공정은 최대 영토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약소국 무시의 전형이다. 1995년 몽골국 통사 3권을 발간하면서 몽골 정부가 무어라 하든 무시하고 '몽골 역시 우리 땅'이라 주장한다. 중국 정부의 반응은 늘 똑같다. "학술활동이지 정부 공식입장이 아니다." 베트남 역시 마찬가지다. 기원 전후의 남월(南越)의 수도가 광저우였는데 그래서 베트남사 역시 중국사다. 둘 다 굳이 이해하면 강제로 뺏은 내몽고자치구나 광둥성과 광시성을 달라고 할까 봐 선수를 치는 것인데 원래 상대방 또한 제 마음과 같을 것이라 지레짐작하는 것이 사람이다.

이상은 1954년에 발행된 중국근대간사(中國近代簡史)의 아래 지도, '잃어버린 실지'에 잘 나온다. 이를 잘 요약하고 있는 동양대 김운회 교수의 글을 인용한다.

"우리는 동북공정이 1990년대 시작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중국 공산당(한족) 정부는 일관되게 한국을 중국의 실지(失地; 잃어버린 영토)로 파악한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전쟁은 한족의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중국이 개입했다고 볼 수도 있다.
동북공정은 사실상 한족의 중국 공산당 정부의 수립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중국근대간사』에 실린 지도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17개 지역이 원래 중국 영토였는데 미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자들이 중국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하여 실지가 되었으므로 이제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Owen N. Denny(柳永博 譯註) 『청한론(淸韓論)』(동방도서:1989) 64쪽] 이 책은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교과서의 일종이다. 이 논리대로 한다면 한반도 전체가 중국에 넘어가는 것은 피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다만 시기가 문제일 뿐이다. 지도를 보면 대만이 중국령이 되면 다음 차례는 한국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미 대만이 중국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도 상당히 위태롭다.
현재의 동북공정은 고구려사나 발해사의 편입이지만 길게 보면 백제공정과 신라공정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중국은 최근 대대적인 양자강 발굴사업을 통해 한반도나 일본의 벼농사 기원을 연결하려 하고 있다. (日本 『文藝春秋』2005년 4월호 「長江文明發堀記座談」) 그런데 재미있게도 중국의 실지에 일본은 빠져있다. 중국에 보낸 조공이라면 일본도 만만찮은데 중국은 아마도 일본에 대해서는 다소 주눅이 든 듯하다. 하기야 센 사람에게는 한없이 약하고 약한 이웃에게는 끝없이 사나운 것이 한족이다."

두 번째는 중화 종통의 수립의 단계로서 단대공정이다. 이는 각개격파의 과정을 통해 최대영토주의를 달성하고 아울러 55개 민족을 중국이란 '통일적 다민족국가'에 강제로 편입했다면, 그 안에서 서열을 매겨 누가 적통이고 누가 서자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다. '중화 대가정'을 이룬다고 해서 그것이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의 비둘기 가정이 아니라 중화주의의 기초를 닦은 한대 동중서의 종법제처럼 집안의 엄격한 질서를 세우는 것이다.

이전에 화하의 중화가 있고 주변이 모두 남만-서융-동이-북적의 오랑캐로서 불구대천의 이질적 관계였다면, 지금은 그 모두가 중화의 한족을 중심으로 불상용(不相容)에서 신분질서가 엄격한 상용의 단계로 나아가는 것으로 중화 울타리 안에서의 내면화된 화이관(華夷觀)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사진 2) <중국근대간사(中國近代簡史, 1954년)에 실린 중국의 실지(失地)>
[해설: 1949년 건국한 중국은 이미 그 무렵부터 한국을 되찾아야 할 잃어버린 땅으로 여기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는 교과서의 일종. 한국전쟁에 참전한 속내를 짐작할 만함.]

이를 위해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산시성에서 섬서성까지 수많은 곳을 뒤지며 전설의 나라인 하나라를 실재로 둔갑시켰으며 이전에 그들이 오랑캐 동이의 나라이자 그래서 주나라의 건국을 천명이라 했던 상나라(殷)와 주나라까지 이어, 하-상-주의 시대를 중화 적통의 발현으로 승격하고 아울러 그 시기를 기원 전 841년에서 졸지에 기원 전 2070년으로 끌어올렸다. 대한민국에서 단군조선의 실재를 역사교과서에서 '건국하였다고 한다'에서 '건국하였다'로 단 한 줄 바꾸는데 반세기가 걸렸는데 이들은 순식간에 1229년을 끌어올리고 그 무렵부터 중화 문명의 광휘가 비쳤다고 13억 인구를 대상으로 7년 전부터 세뇌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중화 대가정을 이루는 55개 들러리 민족은 비록 오늘 더 이상 변경 밖의 오랑캐가 아니라 중화문명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졌지만 그럼에도 애초부터 철저히 적통에서 제외된 서자였을 뿐이다. 하상주 단대공정에 의하면 기원 전 2070년부터 지난 4천년 중화의 교화 아래 차츰 문명화된, 그렇게 구원받은 민족이란 말이다. 참으로 어이없지만 이것이 중화식 종법제를 근간으로 한 현대판 화이관의 '만들어진 역사' 하상주 단대공정의 실체다.

그러나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지금 우리는 앞서의 개별 공정이나 단대공정보다 더욱 끔찍한 도발에 직면해 있다. 그는 더 이상 강변이나 해석의 억지와 세뇌를 넘어선 인위의 극치인 중화민족의 재편이며 그 도구가 곧 탐원공정과 요하문명 흥기론이다.


(사진 3) <중화삼조당. 왼쪽부터 치우 헌원 신농>
[해설: 신화의 세계에서 판천대전의 패배로 볼모로 잡힌 신농과 탁록 벌판에서 잡아죽여 그 시신까지 사방에 흐트렸다는 치우천황까지 졸지에 헌원과 함께 중화의 조상으로 둔갑했음.]

한국인들 중에서 베이징에서 서북으로 4시간 정도 달려 도달하는 하북성 탁록에 가본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런데 반드시 가보셔야 한다. 그 곳에 바로 중화삼조당이 있기 때문이다. 한족의 시조라고 말하는 (우리의 단군에 해당하는) 황제 헌원은 물론 1980년대 이전에는 역시 오랑캐의 수장이었던 염제 신농과 그들이 그렇게 미워하던 치우까지 한족의 공동조상으로 모셔놓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곳에서 베이징 올림픽의 성화를 내내 켜둘 것이다.

이는 한나라부터 2천2백년 동안 불구대천의 오랑캐라 여겼던 남만-서융-동이-북적이 모두 지금은 단 하나의 중화민족이라고 전세계 65억 인류에게 창춘 아시안 게임처럼 선전선동과 세뇌를 하고자 함이다. 신농과 치우를 헌원과 함께 중화민족의 공동조상으로 모심을 거듭 보여주고 강조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왜 꼭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말이다. 이미 한족이 세계 4대문명의 하나인 황하문명의 당사자라고 65억 모두가 알고 있는데 신농이야 그렇다 치고 천하디 천하게 저주를 퍼부었던 치우까지 조상이라니 한족 엘리트의 자존심으로 어떻게 이것이 가능한지 모를 일이 아니겠는가.

그 답은 바로 황하문명의 근거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중화문명의 뿌리를 다시 캐는 탐원공정을 2003년부터 부랴부랴 시작하게 된 것이다. 무슨 말인고 하니 먼저, 1973년 무렵에 양자강 하류의 하모도 유적에서 이전의 황하 문명보다 1천년이나 앞선 기원 전 5천년까지 올라가는 거대한 신석기 유적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연달아 80년대 말 이후에 소하서를 비롯한 요하 일대에서 그보다도 1천5백년이나 앞서는 기원 전 6천5백년경의, 고도로 발달되어 국가 단계로까지 진입했다 추측할 수 있는 신석기 유적이 대거 발굴되고 지금도 발굴되기 때문이다.


(사진 4) <중화삼조당 치우와 탁록대전 벽화>
[해설: 동두철액(銅頭鐵額)이라 한족들도 인정했던 철기문화의 선구자 치우천황을 졸지에 돌도끼를 든 야만인으로 묘사하고 있음. 억지를 부리다 곳곳에 논리의 허점을 노출함.]

이리 되면 만사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것이다. 한족의 입장에서 아무리 55개 민족의 땅을 억지로 빼앗고 그 역사를 하상주에 따르는 주변부 문화로 규정해봤자, 동아시아 문명의 기원이 황하가 아니라 진한대 이전 남만의 무대였던 양자강 하류이거나 그보다 더 적대 관계였던 유목사회 즉, 동이와 북적의 본거지인 요하 일대라면 중화문명의 원조는 결국 예맥의 유목민 계통이고 한족은 그 문명의 수혜를 받은 후계자 밖에 아니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80년대 들어 신농을 공동조상으로 끌어안고 '한족은 염황지손(炎黃之孫)'이란 신조어까지 만들어내었으며 요하 일대의 시원문명이 드러난 뒤로는 급기야 치우까지 중화의 3조상으로 일거에 격상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리 되면 논리의 모순이 생긴다. 아무리 공동조상이라 한들 오랑캐들과 승부를 겨루었고 대부분 중원을 오랑캐가 지배한 역사는 그대로 남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오랑캐의 개념을 없애버렸다. 더 이상 동이-서융-남만-북적이란 말을 아니 쓰고 그 옛날 한족 만고의 충신 악비가 울고 갈 만큼 모든 것이 중화의 내전일 뿐 원래부터 하나의 민족이란 억지를 쓰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단대공정의 통사로서의 확장이다. 적서의 차이가 있을 뿐 유사 이래로 하나의 중화문명이란 어거지를 쓰는 것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아무리 한 문명이었다 한들 그래도 예맥은 예맥이기 때문이다. 염제 신농의 경우야 어차피 천여년 전 당대를 지나면서 완전히 한화되어버렸고 (다시 말해 저항할 주체도 없고) 게다가 80년대 이래 무려 4반세기 동안 집요한 선전과 세뇌공작 끝에 오늘의 중국인은 물론 해외에서도 원래 한족의 그 뿌리인가보다 믿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우리의 포털 사이트를 뒤져봐도 다 그렇게 나온다. 쓰레기 자료일 뿐이다.) 지금까지 엄연히 다른 문명의 맥락 위에 서 있는 코리아와 만주인들의 경우에야 도무지 역사 사실을 세탁하려 해도 한도가 있고 아무리 치우를 공동조상의 반열에 올려도 아귀가 잘 맞지 않는다.

그래서 고심 끝에 나온 것이 족보의 위조다. 즉, 요하 일대의 홍산문명을 이끈 예맥이 황제의 후손인 전욱의 후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아귀를 맞추기 위해서 대륙의 모든 족보를 뜯어고치는 대공사와 그를 믿도록 만드는 세뇌공작을 2000년경부터 대대적으로 벌이고 있다. 원래 한족의 뿌리는 스스로 주장하는 바 화하(華夏) 아닌가. 그런데 이를 둘로 쪼개어 중원의 한족은 원래 화하가 아닌 화족이고 발해만부터 산동반도를 거쳐 양자강까지 대륙 연안의 동이족은 하족이란 것이다. 그리고 그에 더해 만주일대의 동이와 북적은 황제의 직계 후손이라고 하고 있다.

이것이 곧 중화의 3대 조상을 이은 중화의 3대 집단이다. 치우는 동이가 아닌 하족의 선조로 둔갑하여 버렸고, 신농은 중원을 중심으로 한 화족의 선조로 이사하였으며, 우리를 비롯한 동이와 북적은 졸지에 참으로 황송하옵게도 황제의 직계 자손으로 가장 서열이 높은 집단으로 편입되어 버린 것이다.

아무리 한족이 전세계의 패자가 되려는 욕망에 눈이 멀었다 해도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가 있는가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이것이 현실이고 이미 중국에서는 정설이 되어버렸다. 한족들 중에서도 우리처럼 양식이 있고 식견이 탁월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럼에도 공산당 한족 정부에서 검은 고양이가 흰 고양이라 하면 흰 고양이가 되고 사슴을 가르켜 말이라 하면 말이 되는 것이다. 누구도 그에 대들지 못하는 곳이, 13억이 물질의 풍요는 누리되 정신의 자유는 박탈당한 오늘의 동아시아 대륙 즉, 중국이다.

작년 6월부터 요녕성 박물관에서 요하문명 특별 전시를 벌이고 있다. 그 곳에 가보면 내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전세계를 향해 펼쳐보일 중화민족의 위조 족보가 다 나온다. 중화민족은 황하문명의 적통인 화족과 장강문명의 적통인 하족이 화학적으로 결합한 것이고, 뒤늦게 시조인 황제의 직계 후손인 만주인과 코리안 그리고 몽골인에 이르는 북방의 제민족들을 찾게 되어 매우 기쁘며, 다행스럽게도 황제의 직계 후손인 코리안과 만주인과 몽골인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요하문명을 건설했고 세계 최대의 제국까지 만들었으니 그 원나라와 청나라의 강역을 이어받아 오늘의 중국이 들어선 것은 당연하다는 이야기다.

그러길래 황제의 직계 후손들은 이제 제 고향을 제대로 찾아왔으며 앞으로 중화민족의 일원으로서 공동의 3조상을 모시며 원래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인류사회에서 중화의 찬란한 문명을 한마음 한몸으로 건설해 나갈 것이라고 웅변할 것이다. 그것이 요녕성 박물관의 상설 전시전의 주제이자 베이징 올림픽의 주제가 될 화하일통(華夏一統)이다.

지난 반만년의 모든 역사의 진실과 학문이 사라지는 순간이며 졸지에 단군과 징기스칸이 황제의 후예로 전락하는 날이 바로 내년 8월8일 베이징 올림픽의 날이 될 것이다. 그 날 후진타오를 비롯한 공산당 한족의 엘리트들이 마침내 수천년의 숙원을 이루고 유목세계를 영원히 평정했다고 중화삼조당에 제를 올리면, 거기 억지로 끌려와 앉혀진 치우와 8천만 코리안 그리고 8백만 몽골인과 숨죽여 지내는 만주인들은 무슨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인가.


결론; 나라를 잃어도 찾으면 그만, 그러나 역사를 잃으면 민족은 사라진다

우리 사학계의 고충을 다 이해한다. 역사는 사료와 유물로 말해야 하는데 그 증빙도 빈약한 사람들이 재야사학자니 무어니 하면서 민족사의 시원과 유래를 말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하고 곤혹스럽겠는가. 그러나 그 진심이 통하려면 전제가 있다. 제발 중국이 던져주는 논쟁거리에 휘말려 조공과 책봉이 어떻고 발해의 민족 구성은 어떻고 현미경만 갖고 움직이지 마시고, 단대공정이니 탐원공정이니 요하문명론이니 사학계에서 보아도 말도 되지 않는 중국 측의 국가 관제 역사학을 깨뜨려 주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결론에서 이 말씀을 미리 드리는 이유는, 언제나 전쟁에서는 밖의 적보다도 안의 내분이 더 무섭기 때문이다. 천하의 연개소문이 다스리던 고구려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알지 않는가. 그 당시 당나라 역시 돌궐을 겨우 평정하고서야 덤벼들었으며 그 고구려가 무너졌음에도 티벳이 장안을 점령하여 결국 만주와 한반도에서 땅 한 뼘 얻지 못하고 황급히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았는가. 연개소문 자식들의 내분이 아니었으면 역사의 물줄기가 어디로 흘러갔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볼품없지만 이 대목까지 역사학의 문외한이 쓴 이 글을 보시라. 어느 하나 단군조선이 얼마나 위대하고 천부경이 인류의 지혜이며 마고문명이 인류의 시원이고 하는 말이 단 한마디도 없지 않은가. 그럼에도 동아시아의 모든 역사의 진실과 학문을 잿더미로 만들며 멀쩡히 살아있는 수많은 동아시아인의 족보를 바꾸는 환부역조(換父逆祖)의 만행을, 진시황보다 더한 21세기의 분서갱유를 얼마든지 규탄하고 반박할 수가 있다.

그럼에도 도무지 이 나라 사학자들은 지금까지 무얼 하셨는가. 더 이상 피끓는 심정으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재야사학자들을 비롯한 오늘의 화랑들과 조의선인들을 핑계삼아 먼 산 불구경 하지 마시고 오히려 그들을 논리적으로 무장시켜 주고 나아가 그들이 하지 못하는 전문적인 분야에서 공산당 한족 엘리트들의 분서갱유를 전세계에 알리고 끝을 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사진 5) <2001년 상하이 APEC 정상들의 당장(唐裝) 촬영>
[해설: 오늘 중국은 당나라의 장안처럼 세계 최강으로 도약하려 함. 그러나 당은 미국처럼 수많은 민족이 어울린 개방사회였지만 지금 중국은 수많은 민족의 뿌리를 뽑고 오로지 중화민족으로 분식한 한족만의 폐쇄된 나라임.]

단재 신채호 선생을 비롯한 여러 선열들께서 말씀하셨듯이, 나라를 잃어도 다시 찾으면 그만이지만 역사를 잃으면 그래서 그 정신과 영혼이 혼미해지면 민족이란 존재 자체가 사라진다. 우리는 이미 불과 얼마 전인 지난 세기에 일제 식민 치하에서 내선일체란 미명 하에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말과 글 그리고 성씨와 이름까지 코리아의 영혼이 사라질  뻔했던 위기를 겪었으며 그 몸서리치는 기억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지 않은가. 지금 그 고통을 만주인과 몽골인들이 나아가 한족에게 핍박받는 55개 모든 민족들이 고립무원의 벼랑에서 반세기 넘도록 처절히 겪고 있는 것이다.

수와 당과의 백년 전쟁에서 유목세계를 지켜내는 방파제의 역할을 고구려가 했듯이 오늘 그 역할을 할 곳은 지구상에 단 하나 코리아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길이 곧 오늘의 홍익인간이 될 것이다. 겁먹을 이유는 없다. 앞서 말했듯이 대대로 한족은 강한 자에게는 약하다. 그러나 지금처럼 우리가 알아서 긴다면, 말도 되지 않는 족보에 우리까지 편입되고 말 것이다.

자칭 타칭 대한민국을 이끌고 계시는 지도층 인사들이여. 시민사회를 비롯하여 학계와 언론계와 문화계와 종교계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무수한 인재들이여. 제발 코 앞의 사소한 권력 이동에 모든 정신을 쏟는 반도인의 근성에서 벗어나시길 바란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몸을 던지지 않고 말 한마디 아니 하면서 언제까지 동강난 반도 안에서 골목 대장 역할만 하실 것인가. 문제가 생기면 속 편하게 그저 정부에게 그 책임을 다 미룰 것인가. 한족 엘리트들이 가르쳐주었듯이 지구상에서 가장 뿌리깊은 요하문명의 후계자답게 코리아와 이 동아시아가 부닥친 오늘의 위기를 어떻게 넘어서서 20억에 달하는 동아시아인들의 자존심을 살리고 그들을 먹여 살릴 것인지 고뇌하시길 바란다.

1천4백년 전에는 고구려가 이 민족을 살리고 동아시아의 유목세계를 지켜내었지만, 오늘 코리아가 다시 그 역할을 제대로 못해낸다면 동아시아의 역사는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고 머잖아 동아시아는 지금의 팔레스타인보다 더한 죽음의 대결장으로 변할 것이다. 이미 위구르가 그리 바뀌지 않았는가. 바야흐로 당나라가 부활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중국에는 당나라가 지닌 장점조차 없다. 그를 넘어서서 한국과 중국이, 그를 둘러싼 수많은 민족이 공존공영하는 세계의 창조는 이제 우리 어깨에 달려있다. 베이징 올림픽을 희망의 제전으로 만들 책임은 결국 우리의 몫인 것이다.


金 碩 圭
1968년 대구 출생
서울대 국사학과 졸
민족문제연구소 청년회장, 통합민주당 조직부장, 우리민족서로돕기불교운동본부(現 좋은벗들) 정책실장 역임
現: 코리아글로브 운영위원, Wfocus.Net 발행인, (주)케이지플러스 대표이사, (사)나눔과 미래 이사
  • 永樂 2007.05.23 17:06
    사진까지 보시려면 파일을 내려받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