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청간담회 - “유목민史로 바로 읽는 동아시아史”

by KG posted Jul 19, 2005







<간담회 내용>

지난 1년 동안 프레시안에 연재하고 책으로도 출간한 “삼국지 바로 읽기”는 무척 힘든 작업이었다. 우리 사회에는 정말 많은 삼국지 마니아들이 있다. 때문에 처음 연재를 시작했을 때는 엄청나게 많은 이견이 쏟아졌고 공격도 많이 당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삼국지가 약 40여 가지 되는데, 보통 삼국지 마니아들은 1년에 삼국지를 3번 정도 읽는다고 한다. 대학교수를 중심으로 삼국지를 사모하는 모임이 있어서 해마다 중국의 삼국지 유적을 찾는 기행도 있다. 그만큼 삼국지는 우리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던 중화주의적 문화유산이었다.

왜 지난 천년 동안 삼국지를 바로 읽지 못했을까 하는 질문을 해본다. 중화주의를 홍보하는 왜곡된 역사관으로 쓰인 소설인 삼국지는 진작 퇴출되었어야 하는 책인데 말이다. 우리도 알고 있는 소설 “톰소여의 모험”은 지금의 미국 교과서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검둥이'라 부르는 등 인종차별적 표현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삼국지의 내용이 중화주의적 춘추필법으로 왜곡된 것이라면 진작 버렸어야 했다. 삼국지의 끈질긴 생존력은 결국 중화주의를 계속 유지하려는 주류 지식인사회의 문제라고 본다. 요즘에는 문제제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왜냐하면 중국의 동북공정(東北工程) 덕 때문이다.

제가 이 일에 뛰어든 직접적인 이유 역시 중국의 동북공정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을 보면 동북공정에 대한 대안으로 먼저, 기존의 사학계가 추진하는 ‘고구려 지키기’가 있는데 이는 유대인의 논리처럼 국제적으로 오류에 빠질 수가 있다. 다음으로  ‘요동사(遼東史)’개념-요동의 역사를 중국사도 한국사도 아닌 제3의 영역으로 보려는 시도가 있는데 역시 동북공정에 대한 대응으로는 부족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쥬신’의 관계사를 중심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 잘 아시겠지만 ‘쥬신’은 만주 일대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 스스로를 부르는 이름이었으며, 17세기까지 사용됐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쥬신 관계사 역시 아직까지 이렇다 할 연구 성과가 없고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다.

낙양지역에서 시작해 동아시아 전역으로 뻗어나간, 황하문명의 주인이었던 쥬신은 동호, 숙신, 예맥의 다른 이름이고 현재는 몽골, 만주, 한반도, 일본에 거주하고 있다. 문제는 역사에서 만주가 사라지면서 쥬신도 사라지고 한반도의 역사 역시 중국의 역사에 편입될 가능성이 많다는 사실이다. 중국이 현재는 대만을 합병하는데 집중하지만 다음은 한반도가 목표가 될 것은 자명하다. 지금 한족 부흥운동이 한창이다. 중국의 한족부흥운동을 지켜보는 우리로서는 두려움이 전해온다. 중국의 한족과 쥬신족사이의 크고 작은 전쟁에서 쥬신족이 이겼고 그 결과 중국의 영토를 넓혀준 것도 쥬신족인데, 결과를 놓고 보면 항상 쥬신족은 한족에 흡수되고 말았다. 실제 13억 중국 인구 중에 한족은 5억 정도 밖에 되지 않음에도 한족에 자발적으로, 강압적으로 흡수된 결과가 12억 가량의 한족이다.  1960년대 중국정부에서 한족을 만주로 대량 이주시켜 동화정책으로 인해 만주족은 거의 없고 만주어를 가르치는 곳도 시골의 초등학교 한 곳이 전부이다.

다른 범주의 이야기지만 우리 사학계의 문제도 심각하다. 주류사학계는 피라미드 구조로 되어 있어 선배의 눈치를 봐야하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한다. 반대로 재야사학계는 침소봉대하는 경향이 있다. 각 시대 분야별로는 연구가 진행중이나 전체역사를 아우를 수 있는 시야를 갖지 못하고 있다.

제가 쥬신사를 정리하는 이유는 먼저, 한-일간의 고대사를 정리할 수 있고 동아시아 관계사를 재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관계사 속에서 국사를 해체할 수 있다. 지금 현재까지도 동아시아에서는 수천 년 역사전쟁이 진행 중이다. 이 소모적인 전쟁을 끝내는 방법은 결국 쥬신사를 복원하고 동아시아 관계사를 정립하는 길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국의 동북공정은 결정적인 실수라고 본다. 만약 등소평이 살아 있었다면 동아시아를 긴장시키고 중국의 진출을 사전에 대비시키는 동북공정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동북공정이 한반도의 친중국화에 걸림돌이 될 것은 자명하다. 그렇다고 독도문제에서처럼 흥분하는 대응은 문제가 있다. 그들이 쓰던 원교근공, 이이제이의 길을 찾아야 한다.  쥬신의 역사에서 '한글'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한글이 디지털 시대에 가장 적합한 문자이며 몽골어나 만주어도 쉬운 한글 표기로 대체해야 한다.  몽골을 포함해 만주의 제족을 보존하고 문화를 복원 유지하는데 힘을 써야 한다. 엥글로섹슨의 모습처럼 대쥬신 역사공동체의 복원이 필요하다.  25사 중 '북사', '요사', '금사'의 번역작업을 국가차원에서 지원해서 해도 동아시아 고대사는 다시 쓰여질 것이다.

몇 해 전 KBS 등에서 방영한 ‘몽골리안루트’는 유목민史를 밝히는 좋은 기획이었고 10년 정도의 사전 작업을 통해 이뤄진 결과다. 하지만 몽골리안과 유목민사 발굴의 현대적 의미를 찾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요즘 디지털 노마드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정주농경사회는 인간을 천시했지만 유목민은 평등주의적이고 연합국가를 형성했다. 다수가 한 번 결정하면 힘을 모으는 특성이 있다. 실제로 제 전공이 디지털경영인데 디지털 시대에 맞는다.

마지막으로 중국과 일본이 자꾸만 민족적 실체를 강조하는데 우리는 민족관계사, 동아시아 지역사를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야만 끝없는 소모전을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정치적 실체가 없으면 신화도 소멸한다. 결국 역사논쟁에 있어서도 현실적인 힘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참여회원 : 김석규, 김윤, 김태희, 김현인, 박소희. 박현선, 손종도, 윤여진, 이왕재, 이주원, 이호준, 임윤옥, 홍상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