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경당] 추진위원회 결성을 위한 집담회
때; 2008년(4341년) 1월11일(금) 늦은6시~8시
곳; 서울 코리아글로브 회의실
초청의 취지>
작년 경북 풍기의 동양대에서 “코리아의 신문명을 찾아서”란 제하로 5박6일 제1기 경당을 치른 지 어느덧 반년이 넘었습니다. 그 때 추진단이 고민한 최초의 숙제는 “어떻게 2천년 묵은 중화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였습니다.
애향심은 건전하되 지역주의는 고약한 것처럼, 중화주의는 조국애 수준을 넘어서서 끊임없이 換父易祖의 가짜 신화를 만들어내고 이웃 겨레들을 그 우월주의 유일신앙의 희생양으로 삼는 유사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화주의가 끓어오를수록 중화삼조당에서 요하문명론까지 코리안을 비롯한 이웃 역사공동체의 뿌리를 뽑고 명패를 바꿔다는 역사전쟁의 도발은 불가피하다고 보았습니다. 고름을 아무리 짜내어도 종기를 치유하지 않는 한 병증의 근절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반세기 이어진 제반의 공정은 각론에 지나지 않는 고름일 뿐이고 그 본질에 해당하는 종기는 동아시아 전역을 華夏一統하고 그를 바탕으로 세계의 유일패권국가가 되려는 중화주의의 일관된 국가전략이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진단은 그 대안을 고민하며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지구촌 경당의 부활”을 선언했습니다.
이미 13억의 인구는 출신 겨레를 막론하고 모택동 이래 오늘까지 공포정치부터 고도성장의 천지개벽까지 두루 겪으며 중화주의에 깊이 세뇌되었습니다. 그 스톡홀름 증후군보다 더 심각한 중화주의의 신기루는 민주주의와 공존공영의 세계를 포기하고 대신 세계 유일패권국의 백성이 되리라는 이권의 보상심리에 매달리게 만드는 “공범의 대중정치학”입니다. 13억이 이 선악과를 버리게 되면 도대체 무엇으로 그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 인류사회의 주역으로 기여하게 할 것인가 또 누가 그 길을 안내할 것인가 그 대안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 공허한 마음을 채우는 전망(비젼)으로 無等과 홍익인간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 앞에서만 平等한 존재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곧이곧대로 하늘을 닮은 천손이요 하나의 우주인 無等의 존재이며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란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사람이 같은 우주인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은 곧 우주의 질서에도 부합한 일입니다. 우리의 피곤함을 떠나 이웃 겨레를 차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인류사에 늘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광주의 비극을 아직도 곱씹는데) 불과 반세기도 채 전에 스러진 7천만의 자신들 祖上 그리고 탱크에 깔려죽은 천안문 수천 희생자들과 사람 축에도 들지 못했던 法輪功 희생자들을 아직도 모른 척하고 돈벌이만 몰두하는, “不義는 참아도 不利益은 못 참는” 13억의 집단병리현상은 ‘無等과 홍익인간’이 아니라면 치유할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하물며 그들에게 주변 겨레들과의 공존공영이 무어 그리 심각하게 인류 보편의 양심의 명령으로 들리겠습니까.
또한 누가 그 길을 안내할 것인가에 대해서 “팬코리안 8천만을 66억에게 희생 헌신하는 칸이자 단군으로 양성하자” 이렇게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無等과 홍익인간”이라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무한대의 자산을 물려받고서도 코리안은 아직 그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조선조 이래 반도인으로서 오랜 분리불안증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지금도 코리안은 기껏 해외에 나가 출세하면 그를 팽개치고 귀국해서 금의환향하는 것이 꿈이고 그나마 그리 못하는 분들도 그 꿈을 같이 꾸느라고 투표도 하지 않아 정치 영향력도 미약한 편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사람 다들 우리와 같겠거니 게으른 지레짐작에 갇혀있지 바로 옆의 인류 전체의 1/5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는지 그들의 고통이 무언지 관심도 없이 지내는 우물 안 개구리란 것입니다. 사실 중화주의가 아무리 지독하더라도 그 배경에는 바로 옆 이웃의 “나 홀로 집에” 병증과 극도의 무관심이 한 몫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에 이웃만 병자고 나는 무한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중화주의의 극성은 반도인의 자폐증과 짝을 이룹니다. 불과 얼마 전 다른 이도 아닌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내뱉은 균형자론이란 무지하고 어설픈 발언 때문에 얼마나 창피를 겪었습니까. 중화주의를 넘어서려면 우선 우리 안의 5백년 넘게 묵은 반도근성과 그보다 더 오래 된 소중화주의의 인을 먼저 뽑아내어야 합니다. 그를 위한 가장 적절한 대안이 고구려의 경당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까닭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반도근성을 넘어서기 위해서 대륙인의 상징으로서 고구려의 부활이 절실합니다. 그저 대륙인이 아닙니다. 고구려는 지난 수천 년의 세계사에서 유목이동 對 농경정착이라는 二分法의 通念을 넘어선 보기 드문 복합문명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라 유라시아의 온갖 지혜가 흐름을 타고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를 거쳐 요하 일대에서 만나 어우러져 문명의 여명을 꽃 피우지 않았습니까. 고조선과 부여는 그 젖줄에서 태어났으며 고구려는 그를 이어 동아시아의 복합문명을 계승했습니다.
그로 인해 고구려 멸망 이후에도 후고구려 발해는 물론 이정기의 제나라와 고려까지 고구려의 후손을 자처하는 흐름이 동아시아 대륙 곳곳에서 7백년을 면면히 이어왔으며 오늘의 우리 또한 코리안으로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더해 고구려는 다민족 국가였습니다. 고조선을 잇는 부여계는 물론 오늘의 몽골인 거란과 청나라를 세운 만주인들까지 모든 북방계통들이 고구려라는 천년의 정체성으로 뭉쳤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서희는 무슨 수로 소손녕의 80만 대군을 돌려보내고 강동6주를 돌려받았겠습니까. 이렇듯 우리는 엄청난 자산을 물려받고서도 그저 썩히고 있습니다. 조상들에게는 물론 우리보다 어려운 여건에서 고생하며 살아온 주변 이웃 겨레들에게 우리는 매우 미안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물론 고조선까지도 外患을 빌미로 실은 內憂로 무너진 것처럼 지난 조선조 이래 코리안은 스스로 대륙과 인연을 끊고 반도의 외톨이로 자처해왔으며 그로 인해 결국 지난 세기에 역사상 최초의 불행을 자초했습니다. 오늘 이 시점에도 막상 추진단이 더욱 우려한 것은 한족 공산당 지도부의 집요한 도발보다 우리 안의 역사 불감증입니다. 고구려연구재단의 해체 이래 들어선 동북아역사재단이 보여주듯 아예 역사전쟁의 맥락도 짚고 있지 못하며 특히 그를 중화주의에 입각한 한족의 국가전략으로 이해하고 대응하리라 기대하기가 무척 힘듭니다. 오히려 사회지도층 일각의 신판 소중화주의의 확산은 심각한 지경입니다.
둘째 민주주의의 요체인 계층이동의 제도화입니다. 고구려를 받침 했던 위대한 저력은 바로 경당에서 나왔다고 보았습니다. 경당은 (고대 신분제 사회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평민과 귀족이란 출신을 가리지 않고 그 자제들을 모아 글 읽기 활쏘기 말 타기 등 제반 당대의 지식과 기술을 가르친 문무겸전의 국민교육기관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중 우수한 자들은 역시 신분을 따지지 않고 태학으로 보내어 국가의 최고인재로 양성하였습니다. 전근대사회에서 백성들에게 교육을 시킨 경우도 드물거니와 설사 교육을 했다 하더라도, 스파르타를 위시한 고대국가들은 물론 20세기 스탈린주의 국가까지도 국리민복이 아니라 오로지 체제의 존속을 위한 화살 받이를 배출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최소한의 지식과 군사기술을 가르친 게 상례였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에서는 경당과 태학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계층이동의 길을 늘 열어놓았으며 그를 통해 그들을 착취와 동원의 대상인 백성이 아니라 국가운영에 공동의 이해관계를 지닌 국민으로 통합하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셋째 공감의 극대화인 情입니다. 고분벽화에서도 보듯이 고구려는 길손을 이방인으로 배척하지 않고 나그네로 중시하는 情 문화의 원형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구려 멸망을 전후해 당나라가 그 장점을 배워갔는데 막상 사람을 존중하는 情은 쏙 빼고 그들에게 익숙한 以夷制夷로만 활용하다가 결국 그 때문에 망국을 앞당겼습니다. 우리가 아는 역사시대 이래 오늘처럼 인류사회의 교류가 일상화된 세계화시대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대다수 인류의 마음이 팍팍한 것은 정나미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돈 벌기 위해서 저희들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서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서지 정말 저들이 우리의 고통을 알기나 할까 아니 저들이 우리를 같은 인류라고 생각이나 할까 이 대목에서는 입맛이 쓴 기억들이 많을 것입니다.
당장 이 아시아부터 돌아봅시다. 2003년과 2004년 같은 12월26일에 연달아 지진이란 대재앙으로 수십만이 일거에 황천객이 되었는데 아시아의 지도국이 되려는 일본은 고베대지진 10주년은 기억해도 옆의 불행에는 무감각합니다. 우리는?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코리안에게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른 겨레가 이해하지 못하는 情을 늘 나누면서도 늘 부족해 하는 사람들. 태안에 50만이 달려가 아픔을 함께 나눈 보기 드문 겨레입니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대한민국 같은 종교 전시장이 어디 있고 그럼에도 사이좋게 지내는 나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情이란 자산을 인류에게 환원해야 합니다. “공감의 극대화”로 인류사회를 지구촌으로 만들어나갈 사명이 코리안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고민이 없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로봇문명이 코앞에 와있고 키메라의 출현을 염려하며 우주시대를 선점하려 미중의 경쟁이 치열한 21세기입니다. 그런데 최소 1천3백년은 넘었고 그 시작은 언제부터인지 알 수도 없는 아득한 고대의 경당을 부활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여전히 느닷없기도 하고 의문이 뒤따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그 전제로 경당은 지구촌의 현안(글로벌 이슈)을 늘 먼저 다룰 것입니다. 누군가 반기문 사무총장을 돕고 돌아가신 이종욱 총장의 유지를 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결단코 反中은 아닙니다. 가능하면 머잖아 한족 청년들을 잔뜩 모셔놓고 경당을 진행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물론 이웃의 1/5의 인류가 함께 앞장서서 지구촌의 민주주의와 공존공영의 지구문명을 만들어가기 위해 헌신하고 선의의 경쟁을 한다면 그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아마 그리 되면 우리가 받았던 최초의 숙제는 비로소 끝나게 될 것입니다.
반도근성의 근절과 중화주의의 극복을 시험대로 하여 우리와 이웃의 인류 1/5을 먼저 공존공영의 지구문명을 만들어가는 길잡이로 양성하는 일, 그를 통해 無等과 홍익인간의 새로운 천년을 여는 일이 지구촌 경당의 시작이자 끝일 것입니다. 그를 위해 역사전쟁의 무력화를 꾀하고 늘 지구촌의 현안을 제 식구들의 일인 양 다루면서, 안으로는 복합문명 고구려의 부활을 통해 명실상부한 유라시안으로서 코리안이 되고 인재양성과 인재등용의 창구를 세계로 활짝 열면서 나아가 수준 낮은 한류가 아니라 “情의 세계화”로 지구촌 구성원이란 공감의 극대화를 꾀해나간다면, 지구촌 경당은 인류사회가 제대로 로봇문명과 유전공학 그리고 우주시대라는 새 천년의 도전 앞에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나설 수 있게 지혜와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일을 기꺼이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당을 아득한 과거의 추억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유의 가치에 주목하며 미래 문명의 브랜드로 되살리고자 합니다. 하여 고구려의 경당과 코리안의 경당을 훌쩍 넘어서서 지구촌 경당으로 명명하고 그 부활과 확산을 위해 성심을 다 하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초청 대상 명단>
조영진 광복회 회원 / 최성해 동양대 총장, 1기 경당 후원인 / 진월 URI코리아 대표 / 이이화 역사학자, 1기 경당 교수진 / 김운회 동양대 교수, 1기 경당 교수진 / 박원길 고려대 교수, 1기 경당 교수진 / 우실하 항공대 교수, 1기 경당 교수진 / 조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기 경당 교수진 / 조용진 한서대 교수, 1기 경당 교수진 / 구해우 미래재단 상임이사, 1기 경당 교수진 /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운영위원, 1기 경당 교수진 / 박기태 반크 단장, 1기 경당 교수진 / 임한필 24반무예 경당 사무총장, 1기 경당 교수진 / 곽현용 24반무예 경당 부회장 / 곽영곤 건설업, 1기 경당 후원인 / 이준달 1기 경당 참가자 / 권재현 동아일보 기자, 1기 경당 후원인 / 김학준 시조시인, 1기 경당 후원인 / 손광주 데일리NK 대표, 1기 경당 후원인 / 방경환 1기 경당 후원인 / 정형진 문명사가 / 김광하 작은손길 대표 / 김형찬 고려대 철학과 교수 / 윤여상 NKDB센터 소장 / 강철환 조선일보 기자 / 정일 FTA대책위 사무관 / 김영광 청소년쉼터 둥지 대표 / 이승렬 CI 컨설턴트 / 박경숙 경기도립국악단 해금수석연주자 / 김정대 주간경기 주간 / 강성룡 코리아글로브 집행위원장 / 김현인 코리아글로브 편집주간
추후 계획 관련 토론>
* 지구촌 경당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그 일상활동은 문무겸전의 인재양성일 수밖에 없으며 그는 반년에 한 번씩 하는 경당이 아니라 ‘상설화된 교육과정’으로 가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중론이 있었습니다. 이에 먼저 의기투합한 분들이 1기 경당의 3인방이라 할 수 있는 김운회-박원길-우실하 세 교수진이고 경당을 먼저 부활하고자 20년 전부터 엄청난 고생을 하신 24반 무예 경당의 지도자들 그리고 ‘모든 겨레가 공존공영 하는 지구문명의 건설“을 늘 고민만 하는 코리아글로브 관계자들이었습니다.
* 우선 당장 2월13일(수)에서 16일(토)까지 지구촌 현안(글로벌 이슈)을 다루는 제2기 경당을 치르자고 24반무예 경당 분들과 함께 합의를 보았는데 여지껏 경기도 여주 수련장을 확보한 것 말고는 아무 준비도 하지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입니다. 교수진과 후원의 섭외 그리고 자금의 미련과 참가자의 모집까지 산 넘어 산입니다. 먼저 가볍게 이 고민에 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
* 다음으로는 본론에 들어가서, “상설화된 교육과정”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집담회(브레인 스토밍)를 갖겠습니다. 지금까지 어설프게나마 나온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지구촌 경당]은 보통 거사가 아닌데 이를 책임감 있게 집중해서 진행하기 위해서 사단법인 준비에 들어가자. 우리가 원한다고 당장 뚝딱 법인 허가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또 그 과정에서 [지구촌 경당]을 이끌어갈 제반의 그림이 시간표에 따라 구체화될 것이다.
- 좋은 지적인데, 일부터 더 열심히 해서 땅을 다지는 게 우선인 듯하다. 1~2기 반년마다 하는 경당 행사 말고 ‘상설화된 교육과정’을 먼저 시험가동 해보자. 3인방은 역사전쟁의 실체에 대해 보다 대중화된 구전논리를 제공하고 24반 무예는 문무겸전의 현실 체현 가능한 과목을 운용하며 코리아글로브는 (미래재단의 도움도 받아서) 지구촌 현안에 관한 교수진의 구성과 교육과정을 개발해보라. 이를 갖고 3~4월 달포 정도 여덟 차례 연속과정으로 참가자를 모집해 시험가동을 제대로 해보자.
- 애초부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들만 하지 말고 [지구촌 경당]이란 이름에 걸맞게 탈북 청년이든 몽골인들부터 시작해서 다국적으로 시작해보자. 필요하다면 북한문제 혹은 몽골과 한몽관계 이해와 교류 활성화 주제부터 다루는 것도 좋지 않은가. 이를 위해 몽골대사관이든 관련 협회든 북한문제 전문 집단이든 여러 곳의 도움을 받고 협력관계를 먼저 맺어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과 몽골을 넘어서서 중일이든 인도든 처음부터 인연 맺으면 좋고.
- 그나저나 자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리 파일럿 프로젝트라 해도 인재양성이란 엄청난 자금소요를 필수 동반하는데 시민학교 수준으로 계속 가면 자칫 고비용 저효율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 취지에 공감하는 자산가든 대기업이든 공공영역이든 연결해야 하지 않는가.
-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간에 이 디지털 시대에 설혹 오지 않더라도 제공할 수 있는 필독서나 필독 자료 그리고 기초자료 등 이수과목과 내용에 관해 따로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기본은 면대면 이겠지만 우리가 세상사람 모두를 만날 수는 없지 않은가.
* 다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衆口難防이 될 수 있게 많은 이야기 거리를 준비해오시기 부탁드립니다.
때; 2008년(4341년) 1월11일(금) 늦은6시~8시
곳; 서울 코리아글로브 회의실
초청의 취지>
작년 경북 풍기의 동양대에서 “코리아의 신문명을 찾아서”란 제하로 5박6일 제1기 경당을 치른 지 어느덧 반년이 넘었습니다. 그 때 추진단이 고민한 최초의 숙제는 “어떻게 2천년 묵은 중화주의를 넘어설 수 있을 것인가”였습니다.
애향심은 건전하되 지역주의는 고약한 것처럼, 중화주의는 조국애 수준을 넘어서서 끊임없이 換父易祖의 가짜 신화를 만들어내고 이웃 겨레들을 그 우월주의 유일신앙의 희생양으로 삼는 유사종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화주의가 끓어오를수록 중화삼조당에서 요하문명론까지 코리안을 비롯한 이웃 역사공동체의 뿌리를 뽑고 명패를 바꿔다는 역사전쟁의 도발은 불가피하다고 보았습니다. 고름을 아무리 짜내어도 종기를 치유하지 않는 한 병증의 근절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지난 반세기 이어진 제반의 공정은 각론에 지나지 않는 고름일 뿐이고 그 본질에 해당하는 종기는 동아시아 전역을 華夏一統하고 그를 바탕으로 세계의 유일패권국가가 되려는 중화주의의 일관된 국가전략이라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추진단은 그 대안을 고민하며 “새로운 천년을 준비하는 지구촌 경당의 부활”을 선언했습니다.
이미 13억의 인구는 출신 겨레를 막론하고 모택동 이래 오늘까지 공포정치부터 고도성장의 천지개벽까지 두루 겪으며 중화주의에 깊이 세뇌되었습니다. 그 스톡홀름 증후군보다 더 심각한 중화주의의 신기루는 민주주의와 공존공영의 세계를 포기하고 대신 세계 유일패권국의 백성이 되리라는 이권의 보상심리에 매달리게 만드는 “공범의 대중정치학”입니다. 13억이 이 선악과를 버리게 되면 도대체 무엇으로 그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 인류사회의 주역으로 기여하게 할 것인가 또 누가 그 길을 안내할 것인가 그 대안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 공허한 마음을 채우는 전망(비젼)으로 無等과 홍익인간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 누구 앞에서만 平等한 존재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 곧이곧대로 하늘을 닮은 천손이요 하나의 우주인 無等의 존재이며 天上天下 唯我獨尊이란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사람이 같은 우주인 다른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은 곧 우주의 질서에도 부합한 일입니다. 우리의 피곤함을 떠나 이웃 겨레를 차별하는 것은 어찌 보면 인류사에 늘 있는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광주의 비극을 아직도 곱씹는데) 불과 반세기도 채 전에 스러진 7천만의 자신들 祖上 그리고 탱크에 깔려죽은 천안문 수천 희생자들과 사람 축에도 들지 못했던 法輪功 희생자들을 아직도 모른 척하고 돈벌이만 몰두하는, “不義는 참아도 不利益은 못 참는” 13억의 집단병리현상은 ‘無等과 홍익인간’이 아니라면 치유할 방법이 없어 보입니다. 하물며 그들에게 주변 겨레들과의 공존공영이 무어 그리 심각하게 인류 보편의 양심의 명령으로 들리겠습니까.
또한 누가 그 길을 안내할 것인가에 대해서 “팬코리안 8천만을 66억에게 희생 헌신하는 칸이자 단군으로 양성하자” 이렇게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나 “無等과 홍익인간”이라는,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무한대의 자산을 물려받고서도 코리안은 아직 그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조선조 이래 반도인으로서 오랜 분리불안증이 몸에 배어서 그런지 지금도 코리안은 기껏 해외에 나가 출세하면 그를 팽개치고 귀국해서 금의환향하는 것이 꿈이고 그나마 그리 못하는 분들도 그 꿈을 같이 꾸느라고 투표도 하지 않아 정치 영향력도 미약한 편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사람 다들 우리와 같겠거니 게으른 지레짐작에 갇혀있지 바로 옆의 인류 전체의 1/5이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떤 가치관으로 살아가는지 그들의 고통이 무언지 관심도 없이 지내는 우물 안 개구리란 것입니다. 사실 중화주의가 아무리 지독하더라도 그 배경에는 바로 옆 이웃의 “나 홀로 집에” 병증과 극도의 무관심이 한 몫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세상에 이웃만 병자고 나는 무한 건강할 수가 없습니다. 중화주의의 극성은 반도인의 자폐증과 짝을 이룹니다. 불과 얼마 전 다른 이도 아닌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들이 내뱉은 균형자론이란 무지하고 어설픈 발언 때문에 얼마나 창피를 겪었습니까. 중화주의를 넘어서려면 우선 우리 안의 5백년 넘게 묵은 반도근성과 그보다 더 오래 된 소중화주의의 인을 먼저 뽑아내어야 합니다. 그를 위한 가장 적절한 대안이 고구려의 경당이라고 보았습니다.
그 까닭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반도근성을 넘어서기 위해서 대륙인의 상징으로서 고구려의 부활이 절실합니다. 그저 대륙인이 아닙니다. 고구려는 지난 수천 년의 세계사에서 유목이동 對 농경정착이라는 二分法의 通念을 넘어선 보기 드문 복합문명이라고 보았습니다. 우리가 잘 나서가 아니라 유라시아의 온갖 지혜가 흐름을 타고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를 거쳐 요하 일대에서 만나 어우러져 문명의 여명을 꽃 피우지 않았습니까. 고조선과 부여는 그 젖줄에서 태어났으며 고구려는 그를 이어 동아시아의 복합문명을 계승했습니다.
그로 인해 고구려 멸망 이후에도 후고구려 발해는 물론 이정기의 제나라와 고려까지 고구려의 후손을 자처하는 흐름이 동아시아 대륙 곳곳에서 7백년을 면면히 이어왔으며 오늘의 우리 또한 코리안으로 불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더해 고구려는 다민족 국가였습니다. 고조선을 잇는 부여계는 물론 오늘의 몽골인 거란과 청나라를 세운 만주인들까지 모든 북방계통들이 고구려라는 천년의 정체성으로 뭉쳤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서희는 무슨 수로 소손녕의 80만 대군을 돌려보내고 강동6주를 돌려받았겠습니까. 이렇듯 우리는 엄청난 자산을 물려받고서도 그저 썩히고 있습니다. 조상들에게는 물론 우리보다 어려운 여건에서 고생하며 살아온 주변 이웃 겨레들에게 우리는 매우 미안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고구려는 물론 고조선까지도 外患을 빌미로 실은 內憂로 무너진 것처럼 지난 조선조 이래 코리안은 스스로 대륙과 인연을 끊고 반도의 외톨이로 자처해왔으며 그로 인해 결국 지난 세기에 역사상 최초의 불행을 자초했습니다. 오늘 이 시점에도 막상 추진단이 더욱 우려한 것은 한족 공산당 지도부의 집요한 도발보다 우리 안의 역사 불감증입니다. 고구려연구재단의 해체 이래 들어선 동북아역사재단이 보여주듯 아예 역사전쟁의 맥락도 짚고 있지 못하며 특히 그를 중화주의에 입각한 한족의 국가전략으로 이해하고 대응하리라 기대하기가 무척 힘듭니다. 오히려 사회지도층 일각의 신판 소중화주의의 확산은 심각한 지경입니다.
둘째 민주주의의 요체인 계층이동의 제도화입니다. 고구려를 받침 했던 위대한 저력은 바로 경당에서 나왔다고 보았습니다. 경당은 (고대 신분제 사회라는 통념에서 벗어나) 평민과 귀족이란 출신을 가리지 않고 그 자제들을 모아 글 읽기 활쏘기 말 타기 등 제반 당대의 지식과 기술을 가르친 문무겸전의 국민교육기관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개중 우수한 자들은 역시 신분을 따지지 않고 태학으로 보내어 국가의 최고인재로 양성하였습니다. 전근대사회에서 백성들에게 교육을 시킨 경우도 드물거니와 설사 교육을 했다 하더라도, 스파르타를 위시한 고대국가들은 물론 20세기 스탈린주의 국가까지도 국리민복이 아니라 오로지 체제의 존속을 위한 화살 받이를 배출하기 위해 백성들에게 최소한의 지식과 군사기술을 가르친 게 상례였습니다. 그러나 고구려에서는 경당과 태학의 사례에서 보듯이 국가의 모든 구성원들에게 계층이동의 길을 늘 열어놓았으며 그를 통해 그들을 착취와 동원의 대상인 백성이 아니라 국가운영에 공동의 이해관계를 지닌 국민으로 통합하였으리라 추측할 수 있습니다.
셋째 공감의 극대화인 情입니다. 고분벽화에서도 보듯이 고구려는 길손을 이방인으로 배척하지 않고 나그네로 중시하는 情 문화의 원형을 갖고 있었습니다. 고구려 멸망을 전후해 당나라가 그 장점을 배워갔는데 막상 사람을 존중하는 情은 쏙 빼고 그들에게 익숙한 以夷制夷로만 활용하다가 결국 그 때문에 망국을 앞당겼습니다. 우리가 아는 역사시대 이래 오늘처럼 인류사회의 교류가 일상화된 세계화시대는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대다수 인류의 마음이 팍팍한 것은 정나미가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돈 벌기 위해서 저희들의 야심을 채우기 위해서 오로지 그 목적을 위해서지 정말 저들이 우리의 고통을 알기나 할까 아니 저들이 우리를 같은 인류라고 생각이나 할까 이 대목에서는 입맛이 쓴 기억들이 많을 것입니다.
당장 이 아시아부터 돌아봅시다. 2003년과 2004년 같은 12월26일에 연달아 지진이란 대재앙으로 수십만이 일거에 황천객이 되었는데 아시아의 지도국이 되려는 일본은 고베대지진 10주년은 기억해도 옆의 불행에는 무감각합니다. 우리는? 더하면 더하지 덜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코리안에게 가능성은 있습니다. 다른 겨레가 이해하지 못하는 情을 늘 나누면서도 늘 부족해 하는 사람들. 태안에 50만이 달려가 아픔을 함께 나눈 보기 드문 겨레입니다. 다른 것을 다 떠나서 대한민국 같은 종교 전시장이 어디 있고 그럼에도 사이좋게 지내는 나라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우리는 이 情이란 자산을 인류에게 환원해야 합니다. “공감의 극대화”로 인류사회를 지구촌으로 만들어나갈 사명이 코리안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고민이 없을 수 없습니다. 지금은 로봇문명이 코앞에 와있고 키메라의 출현을 염려하며 우주시대를 선점하려 미중의 경쟁이 치열한 21세기입니다. 그런데 최소 1천3백년은 넘었고 그 시작은 언제부터인지 알 수도 없는 아득한 고대의 경당을 부활해서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여전히 느닷없기도 하고 의문이 뒤따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래서 그 전제로 경당은 지구촌의 현안(글로벌 이슈)을 늘 먼저 다룰 것입니다. 누군가 반기문 사무총장을 돕고 돌아가신 이종욱 총장의 유지를 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는 결단코 反中은 아닙니다. 가능하면 머잖아 한족 청년들을 잔뜩 모셔놓고 경당을 진행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물론 이웃의 1/5의 인류가 함께 앞장서서 지구촌의 민주주의와 공존공영의 지구문명을 만들어가기 위해 헌신하고 선의의 경쟁을 한다면 그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아마 그리 되면 우리가 받았던 최초의 숙제는 비로소 끝나게 될 것입니다.
반도근성의 근절과 중화주의의 극복을 시험대로 하여 우리와 이웃의 인류 1/5을 먼저 공존공영의 지구문명을 만들어가는 길잡이로 양성하는 일, 그를 통해 無等과 홍익인간의 새로운 천년을 여는 일이 지구촌 경당의 시작이자 끝일 것입니다. 그를 위해 역사전쟁의 무력화를 꾀하고 늘 지구촌의 현안을 제 식구들의 일인 양 다루면서, 안으로는 복합문명 고구려의 부활을 통해 명실상부한 유라시안으로서 코리안이 되고 인재양성과 인재등용의 창구를 세계로 활짝 열면서 나아가 수준 낮은 한류가 아니라 “情의 세계화”로 지구촌 구성원이란 공감의 극대화를 꾀해나간다면, 지구촌 경당은 인류사회가 제대로 로봇문명과 유전공학 그리고 우주시대라는 새 천년의 도전 앞에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나설 수 있게 지혜와 기운을 불어넣어 주는 일을 기꺼이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경당을 아득한 과거의 추억으로 바라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유의 가치에 주목하며 미래 문명의 브랜드로 되살리고자 합니다. 하여 고구려의 경당과 코리안의 경당을 훌쩍 넘어서서 지구촌 경당으로 명명하고 그 부활과 확산을 위해 성심을 다 하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초청 대상 명단>
조영진 광복회 회원 / 최성해 동양대 총장, 1기 경당 후원인 / 진월 URI코리아 대표 / 이이화 역사학자, 1기 경당 교수진 / 김운회 동양대 교수, 1기 경당 교수진 / 박원길 고려대 교수, 1기 경당 교수진 / 우실하 항공대 교수, 1기 경당 교수진 / 조민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1기 경당 교수진 / 조용진 한서대 교수, 1기 경당 교수진 / 구해우 미래재단 상임이사, 1기 경당 교수진 / 김석규 코리아글로브 운영위원, 1기 경당 교수진 / 박기태 반크 단장, 1기 경당 교수진 / 임한필 24반무예 경당 사무총장, 1기 경당 교수진 / 곽현용 24반무예 경당 부회장 / 곽영곤 건설업, 1기 경당 후원인 / 이준달 1기 경당 참가자 / 권재현 동아일보 기자, 1기 경당 후원인 / 김학준 시조시인, 1기 경당 후원인 / 손광주 데일리NK 대표, 1기 경당 후원인 / 방경환 1기 경당 후원인 / 정형진 문명사가 / 김광하 작은손길 대표 / 김형찬 고려대 철학과 교수 / 윤여상 NKDB센터 소장 / 강철환 조선일보 기자 / 정일 FTA대책위 사무관 / 김영광 청소년쉼터 둥지 대표 / 이승렬 CI 컨설턴트 / 박경숙 경기도립국악단 해금수석연주자 / 김정대 주간경기 주간 / 강성룡 코리아글로브 집행위원장 / 김현인 코리아글로브 편집주간
추후 계획 관련 토론>
* 지구촌 경당의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면 그 일상활동은 문무겸전의 인재양성일 수밖에 없으며 그는 반년에 한 번씩 하는 경당이 아니라 ‘상설화된 교육과정’으로 가야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중론이 있었습니다. 이에 먼저 의기투합한 분들이 1기 경당의 3인방이라 할 수 있는 김운회-박원길-우실하 세 교수진이고 경당을 먼저 부활하고자 20년 전부터 엄청난 고생을 하신 24반 무예 경당의 지도자들 그리고 ‘모든 겨레가 공존공영 하는 지구문명의 건설“을 늘 고민만 하는 코리아글로브 관계자들이었습니다.
* 우선 당장 2월13일(수)에서 16일(토)까지 지구촌 현안(글로벌 이슈)을 다루는 제2기 경당을 치르자고 24반무예 경당 분들과 함께 합의를 보았는데 여지껏 경기도 여주 수련장을 확보한 것 말고는 아무 준비도 하지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입니다. 교수진과 후원의 섭외 그리고 자금의 미련과 참가자의 모집까지 산 넘어 산입니다. 먼저 가볍게 이 고민에 지혜를 주시기 바랍니다.
* 다음으로는 본론에 들어가서, “상설화된 교육과정”을 어떻게 만들 것인지 집담회(브레인 스토밍)를 갖겠습니다. 지금까지 어설프게나마 나온 이야기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지구촌 경당]은 보통 거사가 아닌데 이를 책임감 있게 집중해서 진행하기 위해서 사단법인 준비에 들어가자. 우리가 원한다고 당장 뚝딱 법인 허가가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또 그 과정에서 [지구촌 경당]을 이끌어갈 제반의 그림이 시간표에 따라 구체화될 것이다.
- 좋은 지적인데, 일부터 더 열심히 해서 땅을 다지는 게 우선인 듯하다. 1~2기 반년마다 하는 경당 행사 말고 ‘상설화된 교육과정’을 먼저 시험가동 해보자. 3인방은 역사전쟁의 실체에 대해 보다 대중화된 구전논리를 제공하고 24반 무예는 문무겸전의 현실 체현 가능한 과목을 운용하며 코리아글로브는 (미래재단의 도움도 받아서) 지구촌 현안에 관한 교수진의 구성과 교육과정을 개발해보라. 이를 갖고 3~4월 달포 정도 여덟 차례 연속과정으로 참가자를 모집해 시험가동을 제대로 해보자.
- 애초부터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사람들만 하지 말고 [지구촌 경당]이란 이름에 걸맞게 탈북 청년이든 몽골인들부터 시작해서 다국적으로 시작해보자. 필요하다면 북한문제 혹은 몽골과 한몽관계 이해와 교류 활성화 주제부터 다루는 것도 좋지 않은가. 이를 위해 몽골대사관이든 관련 협회든 북한문제 전문 집단이든 여러 곳의 도움을 받고 협력관계를 먼저 맺어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북한과 몽골을 넘어서서 중일이든 인도든 처음부터 인연 맺으면 좋고.
- 그나저나 자금은 어떻게 할 것인가. 아무리 파일럿 프로젝트라 해도 인재양성이란 엄청난 자금소요를 필수 동반하는데 시민학교 수준으로 계속 가면 자칫 고비용 저효율이 될 수도 있다. 누군가 취지에 공감하는 자산가든 대기업이든 공공영역이든 연결해야 하지 않는가.
- 이렇게 하든 저렇게 하든 간에 이 디지털 시대에 설혹 오지 않더라도 제공할 수 있는 필독서나 필독 자료 그리고 기초자료 등 이수과목과 내용에 관해 따로 준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물론 기본은 면대면 이겠지만 우리가 세상사람 모두를 만날 수는 없지 않은가.
* 다 필요한 이야기입니다. 衆口難防이 될 수 있게 많은 이야기 거리를 준비해오시기 부탁드립니다.